posted by 구름너머 2007. 1. 9. 14:06
  • 우주와 호흡하는 집, 한옥
  • ―전국의 고수를 찾아서 [2] 경북 청도 변숙현씨의 韓屋學校
  • 글=장옥관·시인·계명대 문창과 교수
    입력 : 2007.01.09 00:02
    • 시멘트문화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한옥의 아름다운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경북 청도 한옥학교의 변숙현(48) 교장이다. 그는 영남대에서 전통건축으로 박사과정을 마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사람이다. 강의를 하면서 보니까 우리 고유의 주거문화인 한옥이 지나치게 푸대접을 받고 있더라는 것.

      “중국만 하더라도 전통건축을 가르치고 난 뒤에 비로소 서양 건축술을 가르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전 학년에 걸쳐 전통건축 과목이 단 3학점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예비 건축가인 대학생들에게 우리 건축을 실제로 접할 기회를 제공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콘크리트 더미에 밀려 옛것의 아름다움이 다 사라진 이 시대에

      韓屋이라는 토종 집짓기 고수하는 ‘한옥 지킴이’ 변숙현 교장

    • 우리 한옥의 멋을 되살리는 경북 청도 한옥 학교의 변숙현 교장(왼쪽)과 교직원들.매일 아침 참선과 함께 수업을 시작하는 이 학교에서 학생들은 나무를 다듬는 육체 노동을 통해 영혼의 재건축을 경험한다/이재우 기자
    • 10여 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고향인 청도의 야산 자락을 일구어 2003년 8월 한옥학교를 설립했다. 한옥학교는 청도군청 뒤편 낙대폭포로 올라가는 야트막한 야산 언덕배기에 자리 잡고 있다. 정문 구실을 하고 있는 일주문을 뒤로하고 학교에 들어서면 나무 특유의 향기가 물씬 풍겨온다. 목재를 쌓아놓은 실습장과 실습생들이 만든 사모정과 육모정이 곳곳에 눈에 띈다. 너와지붕을 얹은 한옥이 강의실 겸 사무실이다. 비탈진 지형을 이용해 지은 탓에 밖에서 보면 단층인데 들어와 보면 이층 건물이다. 벽은 붉은 황토벽돌로 쌓았고 바닥은 꽃담이 누워 있는 듯 갖가지 와편과 자기 파편을 꽂아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천장 한가운데 샹들리에처럼 달아놓은 조명기구이다. 속을 비워낸 굴참나무 줄기와 나무뿌리를 얼기설기 얽었는데 마치 설치미술 같다. 한옥에 어울리는 조명기구를 설치하기 위해 변 교장이 고안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 학교에는 나무로 만든 조형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굽은 나뭇가지로 만든 방문 손잡이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나무를 다루는 곳이라는 느낌이 금방 와 닿는다.

      감잎차를 앞에 놓고 대화를 나눴다. 감물 들인 생활한복이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안색이 유난히 맑고 앉은 자세가 반듯했다. 왜 한옥을 고집하는지 이유를 물어봤다.

      “집짓기란 자연과 집과 사람이 합일되는 과정”

      그래서 한옥학교에선 매일 아침 명상과 요가로 하루수업을 시작한다

      “자연의 순리를 담고 있는 것이 한옥입니다. 사람의 몸이 소우주라면 그 몸을 낳고 기르고 인격을 도야하는 곳이 집이며 그것이 곧 중우주고, 그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자연이라는 대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옥은 우주와 호흡하는 집입니다.”

      나직나직한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다. 신념에서 배어 나오는 자신감이리라. 한옥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집을 이루는 재료는 나무와 흙과 돌, 그중에서도 핵심은 나무입니다. 나무의 손맛을 알아야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옥학교에서는 나무의 생리와 나무를 다루는 기술에 치중해서 교육을 합니다. 나무에도 위아래가 있는데 이런 이치를 모르는 목수들이 함부로 기둥을 세우기 때문에 요즘 건물이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나무들이 물구나무서서 지붕을 떠받치고 있으니 어떻게 건물의 하중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 장옥관·시인·계명대 문창과 교수
    • 한옥학교의 특징은?

      “집짓기는 자연과 집과 사람이 합일이 되는 삶의 철학을 모색하는 과정입니다. 흔히 한옥이 비실용적이고 불편하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오로지 실용성만 추구하는 현대인의 관점에서만 본 시각입니다. 마당에 내려서서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고 마당의 풀잎에 내려앉은 새벽의 서릿발을 밟으며 느끼는 감촉…, 그런 가운데 이 시대의 화두인 느림의 미학을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변 교장에게 한옥을 짓는 과정은 하나의 수행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한옥학교가 매일 오전 8시 30분 명상과 요가를 통해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옥학교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과거 한옥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옥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서양 건축의 장점을 최대한 받아들여 미래 한국 건축의 정형을 모색하고 있다. 변 교장은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전통 계승이라고 믿는다.

      변 교장에겐 꿈이 있다. 2만 5000여 평 부지에 우리나라 전통건축의 요람과 고건축 노천박물관을 세우는 것이다. 나무의 숨결과 흙의 힘을 믿고 사람과 땅이 어우러져 함께 숨쉬는 집을 꿈꾸는 변숙현 교장이다. 콘크리트 더미에 밀려 옛것의 아름다움이 다 사라진 이 시대에 한옥이라는 토종 집짓기를 고수하고 있는 그는 이 시대의 ‘한옥 지킴이’ 중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