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구름너머 2005. 3. 28. 09:02
전화도 영화도 꽁짜‥ P2P가 세상을 바꾼다
박창신 조선일보 경영기획실 기자 heri@chosun.com
입력 : 2005.03.27 16:39 22' / 수정 : 2005.03.27 20:11 10'


▲ 네티즌들이 다양한 P2P 서비스를 즐기고 있다.
“서버의 스위치를 내려라. 없애버려도 좋다. 그래도 인터넷 세상은 건재할 것이다.”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공급자(서버)이고, 하나는 사용자(클라이언트)다. 셀 수 없이 많은 컴퓨터가 인터넷으로 연결돼 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터넷에는 ‘클라이언트-서버’(CS)의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버가 멈추면 클라이언트는 원하는 콘텐츠와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먹통이다. 그래서 인터넷은 소수의 서버를 중심으로 절대 다수의 클라이언트가 연결되어 있는, 서버 중심의 구조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런 클라이언트-서버의 메커니즘은 오늘날 인터넷의 고전적 형태로 치부되고 있다. 개인 컴퓨터끼리 직접 연결됨으로써 중앙의 통제와 간섭을 받지 않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P2P(Peer to Peer)가 인터넷의 보편적인 서비스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P2P 구조에서는 PC를 포함한 모든 컴퓨터가 클라이언트이면서, 필요에 따라서는 서버의 역할을 수행한다. 중심(中心)이 없는 인터넷 서비스의 새로운 구조다.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는 모든 컴퓨터가 위계질서상으로 동등한 ‘동료(Peer)’이며, 수많은 동료들이 평등하게 엮어낸 새로운 인터넷 환경이 바로 ‘동료 대 동료’의 P2P다.


인터넷의 효시는 1969년 미국 국방성이 연구개발을 발주한 ARPANET이고, 옛 소련과의 냉전 상황에서 추진된 ARPANET 개발의 주된 목표는 ‘핵폭탄이 떨어져도 끊어지지 않는 통신망’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무중심(無中心)의 P2P식 소통구조는 인터넷의 본질이다. 기존의 전화통신망은 교환기가 놓여져 있는 몇 군데에 폭탄을 퍼부으면 그것으로 전체가 마비되지만 인터넷은 세상의 모든 컴퓨터를 없애지 않는 한 완전한 차단이나 파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각종 P2P 서비스가 인기를 모으면서 비로소 사람이 인터넷의 중심이 되고 있다.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는 PC를 사용하고 있다면 PC 사용자가 바로 서버의 운용자이자 인터넷의 중심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P2P를 MP3 음악파일을 교환하거나 영화 또는 동영상 클립을 돌려보는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과 개인의 파일교환은 P2P가 가진 다양한 기능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제 P2P는 파일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지금까지 클라이언트-서버 구조에서 이뤄졌던 인터넷 서비스의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는 추세다.

개인 컴퓨터끼리 직접 연결하는 P2P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어느 정도 서버의 도움을 받아 개인과 개인이 접속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의 소리바다와 미국의 냅스터가 대표적이다. 누군가 중앙에서 서버 컴퓨터를 두고 개인과 개인의 파일교환을 중개하는 만큼 디지털 콘텐츠의 저작권 분쟁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다른 하나는 PC와 PC가 인터넷 주소(IP 주소) 같은 개인정보를 공유함으로써 개인과 개인이 직접 연결하는 방식이다. 그누텔라(Gnutella)가 대표적인데, 개인과 개인이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사적으로 연결되는 만큼 기술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최근에는 이 두 가지를 합친 혼합형(하이브리드형) P2P가 인기를 끌고 있다. 중앙 서버는 개인과 개인, PC와 PC가 서로를 검색해 연결할 수 있도록 사이버 공간과 검색, 그리고 짝짓기 기능을 제공할 뿐이며, 파일교환이든 전자상거래든 모든 행위는 개인의 의지에 따라 개인끼리 이뤄진다.

단순한 파일교환의 수준을 넘어 하나의 사업모델로 최근 등장했거나, 앞으로 P2P의 대대적 확산을 예상케 하는 몇 가지 국내외 최근 동향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블로그·메신저가 대표적 P2P

지난 3월 8일부터 인터넷포털 네이버는 P2P기술을 응용한 부동산 직거래 서비스를 시작했다. 집을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이 인터넷상에서 직접 만나게 해줌으로써 복비(부동산 중계수수료)를 내지 않고도 매매가 성사되도록 했다. 부동산중개업자들이 긴장해야 할 P2P서비스다.

전화도 이제는 P2P방식으로 거는 방법이 생겼다. 전화회사에 돈을 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개인과 개인이 음성통화를 할 수 있는 P2P방식의 인터넷전화(VoIP)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포털 다음은 ‘스카이프’라는 해외의 유수한 인터넷전화 기술업체와 손을 잡고, 올 1월부터 중앙 서버를 경유하지 않고 개인끼리 이뤄지는 인터넷 전화사업을 시작했다. 유무선의 통신서비스는 전기통신사업법상의 기간통신사업자가 막대한 돈을 투자해 이뤄지고 있는데, P2P의 인터넷전화는 인터넷과 PC, 그리고 인터넷전화 소프트웨어만 있으면 된다.

미국에서는 영화 DVD를 개인이 합법적으로 주고받도록 하는 피어플릭스(http://www.peerflix.com)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피어플릭스는 회원끼리 영화 타이틀을 주고받으며 우송의 책임도 회원이 지는 방식이다. ‘원한다’와 ‘가지고 있다’ 리스트에 등록함으로써 보고 싶은 DVD를 저렴한 비용으로 구해 장시간 보관하면서 볼 수 있다. 이렇게 DVD 1개를 빌려보기 위해 피어플릭스 사이트에 내는 돈은 건당 99센트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최근 기업의 업무용 P2P 프로그램 전문 기업인 그루브 네트웍스를 인수하면서 이 회사의 대표이사를 MS의 기술책임자(CTO)로 영입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향후 MS 오피스를 비롯한 각종 소프트웨어 제품에 P2P 기능이 두루 탑재될 것임을 예상케 한다.

오늘날 가장 성공한 P2P서비스는 블로그와 메신저 서비스다. 모두가 주인이 되어 마음대로 꾸미고 자랑할 수 있는 ‘1인 미디어’인 블로그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다면 개인과 개인이 언제라도 직접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메신저 서비스는 P2P의 가장 성공한 모델로 자리를 잡았다. 최근에는 이런 블로그와 메신저에다 파일교환, 웹하드, 원격PC 접속 등 다른 P2P 기능이 결합되어 한층 기능이 풍부해진 복합 P2P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웬만한 검색사이트에서 P2P를 조회하면 수십 개의 P2P 사이트가 성업 중이며, 이 중에는 기능이 매우 다양한 사이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문제는 각종 P2P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참으로 풀기 어려운 난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P2P가 음악, 영화, 소프트웨어 등 디지털 저작물과 각종 음란물의 불법복제 및 불법유통의 루트이고, 이로 인해 저작권 보호의 문제가 불거진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P2P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해결점을 찾기가 어렵다. 지난 1월 17일 발효된 개정 저작권법에 따라 실연자와 음반제작자가 아닌 일반의 네티즌은 음악파일을 인터넷으로 다른 사람에게 제공할 수 없게 됐지만, 개인과 개인이 사적으로 연결되는 P2P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수백 수천 곡의 음악파일을 들키지 않고 손쉽게 주고받을 수 있다.

‘인터넷 종량제’ 논쟁 일으켜


▲ P2P 사이트의 초기 화면들.
P2P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올 들어 대표적 P2P서비스인 MSN 메신저가 ‘웜(worm)’의 새로운 유통경로가 되고 있다. 웜은 끝간 데 없이 자기복제를 함으로써 컴퓨터를 매우 느리게 만들거나 마비시키는 자기복제 프로그램을 말한다. PC를 켜면 자동으로 인터넷 메신저가 뜨도록 해놓은 사람이 매우 많은 요즘, 이런 웜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웜의 유포경로가 주로 이메일이었다면 앞으로는 개인과 개인의 1 대 1 소통수단인 인터넷 메신저가 웜의 확산경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P2P서비스는 애써 구축해놓은 초고속 네트워크의 효용가치를 크게 떨어뜨리는 요소로도 지적된다. 하루 종일 자신의 PC를 일종의 서버로 활용하면서 인터넷에 연결시켜 각종 콘텐츠를 받아갈 수 있도록 해놓은 네티즌이나 밤새 대용량 콘텐츠를 내려받도록 하고 자신은 잠자리에 드는 네티즌이 크게 늘어나면서 네트워크에 쏠리는 부하가 소수의 P2P 파워유저들에 의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최근 정보통신부와 초고속 인터넷사업자들은 인터넷을 쓰는 양에 따라 요금을 부과하는 ‘인터넷 종량제’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런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자 네티즌 사회에서 종량제에 대한 찬반논쟁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 3월 10일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밝혔듯이 인터넷을 자주 쓰는 상위 5%의 네티즌이 전체 접속의 40%를 차지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덜 쓰는 사람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따라서 P2P에 의한 대용량 파일교환을 어느 정도 제한하기 위해서라도 종량제 요금제도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통신사업자들이 수익증대의 돌파구를 엉뚱한 데서 찾고 있다는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P2P서비스, 특히 개인 홈피와 메신저 서비스가 직원의 업무효율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회사 네트워크를 느리게 하고 회사 보안에 구멍을 내고 있다는 자체 판단에 따라 P2P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기업도 최근 늘어나고 있다. P2P 접속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네트워크 증설의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는 사례가 다수 알려졌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내 네트워크에서는 외부와의 P2P서비스 자체를 차단하는 응용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기업의 방화벽을 뚫고 P2P서비스가 가능하도록 고안된 강력한 P2P 프로그램도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P2P는 다양한 문제점과 논란거리를 안고 있다. 불법 복제와 유통에 의한 저작권 보호의 쟁점, 그리고 ‘연예인 X파일’이 보여줬던 명예훼손의 위험성은 완전차단이 불가능한 P2P서비스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계속될 수밖에 없다.

또 P2P 서비스의 확산으로 인해 야기되는 네트워크의 병목현상과 이에 따른 국가 정보인프라의 운용 문제, 초고속인터넷 가입자에 대한 합리적인 요금부과와 공평한 혜택, 그리고 컴퓨터와 네트워크에 치명적인 웜과 바이러스가 중앙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은 채 삽시간에 광범위하게 유포되는 사이버 재앙의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

P2P는 그 자체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개인과 개인의 자유로운 정보공유라는 인터넷의 기본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인터넷 서비스가 P2P지만, 이를 무제한 허용할 경우 인터넷 세상은 보다 혼탁해지고 네트워크는 접속의 체증 현상으로 더욱 몸살을 앓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P2P 서비스가 보다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가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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