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구름너머 2004. 11. 1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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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의 변천사



지금 우리들은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속에서

수천년간 대승불교적 전통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들이 배우고 생활화해왔던 대승불교를

당연히 부처님의 정법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불교도들이 느끼는 바이지만

오늘날의 불교는 세상을 이끄는 정신적 등불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불자들을 수동적이고 염세적으로 이끌며

기복종교로 그치고 있습니다.



선승들은 삶에 도움이 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화두만 되뇌이고 있는가 하면

학식높은 스님들은 도의 실체가 세상의 은원과 옳고 그름마저 벗어난

공한 것이라는 관념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하여

뜻모를 '할!'만 외치는 선불교와 대승불교의 관념성과 비현실성에서 깨어나

구체적인 삶에 도움이 되는 실상의 이치를 주로 하는

근본불교로 돌아가자는 소리를 외치기 시작했고

이러한 흐름은 뜻있는 젊은 스님들과 불자들 사이에

점점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그동안 많은 각자와 선사들이 나왔지만

부처님의 정각을 넘어선 이가 나온 적이 없으며
부처님과 같이 우주의 실상을 밝히고 인과의 이치를 밝힌 분이 없다는 점에서

그 호소력을 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권위와 교리 속에 묻혀 지내던 사람들은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며 현 대승불교가

소승불교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진법이며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현실에 맞게 적응 발전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나도 한 때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처음에는 불법은 너무나 깊고 오묘해

단순한 도덕적인 교훈을 전하는 소승에 그칠 리가 없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법이 대승불교 속에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욱 커져가는 의혹은

유일한 정각을 얻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가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으며

불자들의 삶이 염세적이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깨달음이 환상과 거짓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중생에 대한 자비심과 공덕행으로 가득찬

부처님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분이 유일한 정각을 이룬 분이라는 것은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불교 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알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많은 수행의 체험과 깨달음의 인연을 통해

마침내 부처님의 불법이 크게 변해왔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기에 이를 밝히니

부디 이러한 사실이 진리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부처님의 참법이 무엇인가? 를 살펴보겠습니다.



불교이론에 삼시교판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분류는 유식학을 석존의 교설 중에서 최상의 법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인도 유식학파의 계현(戒賢, Silabhadra)논사가 정립한 이론으로서

제1시 유교(有敎)· 제2시 공교(空敎)·제3시 중도교(中道敎, 唯識敎)의 순서로

불법이 나타났다는 주장입니다.



이와 비슷한 분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불교학자들은

부처님 초기 가르침이 존재하는 사실에 기초해 그 이치를 밝히는

사실교(有敎)였다는 사실에는 모두 공감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즉 유교(有敎)란 말 그대로, 있는 사실에 기초한 가르침으로서,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실상과 실상을 구성하고 있는 이치를 밝힌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처음 부처님은 업이 사라진 해탈한 맑은 마음으로

우주의 진실을 보고 그 속에 흐르는 이치를 밝힘으로써

세상사람들이 사실과 부합된 참된 삶을 살도록 함으로써

불행과 고통이 없고 행복하고 평안한 삶을 살아가도록 한 것입니다.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사실을 사실대로 정확히 알고

세상에 흐르는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것보다 더 좋은 삶은 없습니다.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는 사실은 진실이니

이에 기초하여 가르치는 것은 참된 진리가 되는 것이며



세상에 없는 환상이나 실상에 어긋난 그릇된 말을 가르치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거짓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비법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바로 사실을 사실대로 본 것이며

그 가르침은 사실과 일치한 진리였기에

그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면 어김없는 결과를 얻을 수 있어

중생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리라 하고 부처님을

정각을 이룬 성자라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당시 브라만교의 환상적인 관념과 미신 속에 빠진 사람들에게

어둠에서 벗어나 존재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하셨고

그 속에 흐르고 있는 영원한 법칙을 가르침으로써

무지와 삿된 욕망에서 벗어나 참된 삶을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완전한 깨달음은 세상의 참된 실상과 세상이 움직이는 이치를 드러내

인간이 살아가야 할 올바른 길을 가르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분이 팔십평생 동안 하신 일은 세상의 진실과 이치들을 밝혀

눈이 어두운 중생들이 세상을 바로 보고 바르게 행동하도록 한 것뿐입니다.



그 가르침의 요체는 우주의 참된 실상과 인과의 법칙,

세상을 축복하는 좋은 마음속에 있습니다.



이 세상은 완전한 법계이고 인과의 이치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세상이 움직이는 이치에 따라 좋은 원인을 지으면

자신과 세상을 위하여 좋은 원인을 지을 수 있고 좋은 결과를 얻어

지상극락을 이루고 인간완성인 해탈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에게 있어 이 세상의 모습은

그대로 우주의 진리가 스며있는 경전이었으며

그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게 되면 진리의 법음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설한 사실에 관한 법(有法)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눈에 보이고 인연에 닿는대로

이러한 현상은 이러한 원인과 결과에 의해 이루어지고

저러한 원인을 지으면 저러한 결과가 나타난다고 이치를 밝혔습니다.



부처님의 해탈심에 비치는 실상의 이치는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같습니다.



부처님은 생각으로 법을 만들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사실과 그 속에 존재하는 이치를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래는 참된 말만을 하며, 사실만을 말하며, 진실만을 말하며

속이는 말을 하지 않으며, 사실과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고 전해지는 것입니다



아함경에 여러 장소에서 같은 말을 되풀이 한 구절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이와 같이 같은 현상 속에는 언제 어디서나 같은 이치가 되풀이되고 있음을

항상 똑같이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승론자들은 부처님이 이러한 사실에 관한 법 이외에

근기가 높은 제자들을 위해 세상이 공한 이치를 남겼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초기 경전에는 인과의 이치와 실상의 세계 이외에는

다른 것을 가르친 것이 없었습니다.



만약 그분이 자연의 경전에서 사실적인 모습과 이치 이외에

다른 초월적인 뜻과 이치가 존재하는 것을 보셨다면

반드시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것이며

초기 경전에 그런 내용이 반드시 남아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시며

하나의 현상에 대해 두말을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공한 이치가 실상 속에 존재하는 이치라면

부처님의 초기 가르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상좌부에서

대승경전이 나왔을 때 그러한 공한 이치가 부처님의 정법이 아니라고

부정했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불교에서는 공한 무루의 이치에서는

선업이나 악업, 옳고 그름도 모든 인간의 환이며 착각에 불과하니

모든 구별을 던져버리고 실상이 공함을 깨쳐야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실상이 본질적으로 공하며

인과의 이치가 모두 헛되다는 이야기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본적으로 위배됩니다.



부처님은 수행의 정법으로 바른 이치를 보고

바른 행동을 하고 바른 업을 지어

바른 마음을 얻고 해탈을 얻는 팔정도를 행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생에서 바른 법과 바른 마음을 얻으면

후생에는 반드시 부처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수기를 주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른 이치와 올바르게 살아가는 선업의 유효성이 분명한데

갑자기 모든 선악과 분별의 이치를 버리고

공한 것을 깨닫기만 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실에 관한 인과법을 왜곡하는 관념적 희론인 것입니다.



부처님이 가장 경계한 것은 이와 같이 존재하는 사실을 벗어난 관념과 논리였습니다.



부처님은 이러한 말을 무기라고 하여 진리를 찾고 자신을 닦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하기를 거부하셨습니다.



이러한 주장 뒤에는 힌두교의 염세적 사고방식과

세상을 환이며 공이라 보는 사고방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인도의 브라만 신앙은 이 세상은 본래 맑고 순수하고

전지전능한 브라만(신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우주적인 무지, 환술, 속임수(마야)의 힘 때문에

다양한 형상으로 전개되는 것이지

실제로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선이나 악이라는 것도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므로

아무리 신들도 선업을 지어 천상에 난다 하더라도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므로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난 해탈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출가 유행(遊行)과 고행, 요가로 세상이 공한 지혜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이러한 관념이 부파불교의 이론화와 대승불교의 관념을 통해

불교로 스며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로서 불교는 사실적인 가르침을 버리고 관념적인 논리만 외치게 되었으니

불교를 믿는 나라에서 바른 이치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환상과 무지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초기의 부처님의 가르침이

사실 그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업이 사라진 맑고 순수한 해탈지심으로 세상을 보고

이치를 밝히며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옆에서 시봉하는 제자들은

부처님과 같이 생각하며 같이 행동하니

자연히 마음속에 있던 업이 작용하지 못하고 힘을 잃고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세세생생 변치않을 맑은 지혜와 정견을 얻어

아라한의 경지에 올랐던 것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이 팔십평생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며

법을 밝히신 모습이 팔정도의 전형인 것이며

제자들을 해탈에 이르게 하는 가장 올바른 수행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수천년동안 수많은 구도자들이 거친 산야에서 진리를 찾기 위해 헤매였으나

정각을 얻지 못한 이유도 바로 이와 같이 참된 깨달음의 빛과 업을 잠재울 수 있는

생명의 길을 전해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진리의 빛이 있는 곳에서는 그 속에 머물기만 하면

빛의 은총에 젖을 수 있으나

진리의 빛이 사라진 곳에서는 아무리 혼자 노력한다 해도

진리의 광희를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불경에 보면 정법 500년 상법 1000년, 말법 1만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법의 시대는 법이 있고 깨달은 자도 나오며

상법의 시대는 수행자는 있어도 깨닫는 사람이 없다고 하며

말법시대에는 올바른 가르침도 없고 실천도 해탈도 어려운 시기라고 합니다.



그동안 세상이 밝아지지 아니하고 깨달은 자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상법시대와 말법시대 속에 있었기 때문이며

그 이유는 바로 불법이 훼손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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