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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없는 한탕’ 판치는 공인 도박판
경영진, 유통 가장 ‘돈 놓고 돈 먹기’ … 상위사업자, 하위라인 속이며 자신들 배 불려
정부, 허술한 법망·관리로 사태 방관 … 제2, 제3의 제이유 우후죽순 생겨도 무대책
검찰이 다단계업체 제이유그룹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영진을 출국금지했고 수차례 압수수색을 벌였다. 사업자들은 1조원이 넘는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는 ‘물건을 팔았을 뿐’이라며 사업자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최근 많은 언론들이 제이유 사태를 보도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여전히 다단계 제이유의 실상을 모른다. 현재도 허술한 규제를 피해 제2, 제3의 제이유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제이유는 ‘노력 없는 한탕주의’를 조장하는 도박장과 흡사하다. 경영진은 유통다단계를 표방하며 ‘돈 놓고 돈 먹기’ 시스템을 제공하고 상위사업자들은 하위라인을 현혹, 도박판에 거액을 쏟아 붓게 만들었다. 허술한 법으로 다단계 사기를 가능케 한 공정위도 이번 사태의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지적이다.
유사수신 마케팅 이론 제공
제이유그룹 대표인 주수도씨는 지난 2002년 자신의 평생 역작이라는 ‘소비생활마케팅’을 발표했다. 주씨는 “물건을 사면 살수록 소득이 올라간다”고 주장하며 사업자들을 현혹했다.
주씨는 명목상 유통다단계를 표방하며 ‘중간 유통마진을 사업자와 회사가 나눠 갖는다’고 선전했으나 실상은 ‘돈 놓고 돈 먹기’라는 한탕주의 시스템을 도입했다. 즉 돈을 많이 투자할수록 더 많은 돈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주씨의 논리는 일반적인 경제논리에 정면 배치됐지만 사업자들은 너도 나도 거액을 투자했다. 투자 초기에는 주씨의 약속대로 수당이 꼬박꼬박 지급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개월이 안돼 수당 지급이 끊겼다.
사업자들은 원금의 절반도 안되는 돈만을 수당으로 받았지만 이마저도 맘대로 쓸 수 없었다. 회사측이 ‘물건을 다시 구매해야만 나머지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방침을 변경하자 발이 묶인 사업자들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함께 부자되자’ 거짓 권유
상위사업자들은 주씨의 논리를 행동으로 옮겼다. 이들은 대부분 제이유사업 이전 다른 다단계업체를 경험한 사람들로, ‘먼저 치고 먼저 빠져나와야 이득을 본다’는 다단계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다.
상위사업자들은 소비생활마케팅 초기에 집중 투자해 거액의 수당을 받은 뒤 회사측이 지급해야할 누적수당이 많아지면 투자를 중지했다. 대신 하위사업자들에게 자신의 통장을 보여주며 “별다른 노력 없이도 투자만 하면 원금 이상의 수당이 생긴다”고 현혹했다.
상위사업자들의 통장에 찍힌 수당 지급액수를 보며 하위라인 사업자들은 쉽게 속아 거액을 투자했다. 수당 지급이 끊긴 후 상위사업자에게 속은 사실을 알았지만 너무 늦었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하위사업자들 계속 끌어들여 자신의 손해를 만회하는 일이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신하는 이유다.
‘자율정화’ 사태 키운 정부
다단계 주무부처인 공정위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4년부터 제이유로 대표되는 유사수신 다단계의 폐해가 드러나면서 시민단체와 국회 등의 대책 주문이 거셌지만 공정위는 ‘자율정화’를 외치는 데 그쳤다.
공정위는 2001년 공제조합을 만들어 업체 스스로 법 준수에 나서도록 했다. 하지만 출자금을 많이 낸 업체가 공제조합을 좌지우지하면서 공정위의 기대는 무위로 돌아갔다. 특수판매공제조합에 가장 많은 출자금을 낸 제이유는 별 다른 제재없이 유사수신 마케팅을 펼칠 수 있었다.
YMCA시민중계실과 안티피라미드 등 시민단체와 국회 정무위 소속 의원들이 유사수신 마케팅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으나 공정위는 ‘법적으로 물건이 오가기 때문에 유사수신으로 볼 수 없다’며 방관했다. 더 큰 문제는 제이유에서 이탈한 사업자와 경영자들이 제2, 제 3의 다단계업체를 만들었지만 제재가 불가능한 상태다.
‘잿밥 관심’ 사업자도 책임
회사 경영진의 사기마케팅과 상위사업자의 거짓 현혹, 정부의 수수방관이 제이유 사태를 만든 원인이지만 불가능한 수당 지급에 현혹된 하위사업자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상·하위를 막론하고 물건에는 별 관심이 없고 회사가 약속한 수당만 보고 거액을 투자한 책임은 본인이 스스로 져야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업자들이 거액을 들여 물건을 사놓고도 이를 찾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제이유에 생필품을 납품하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일반적인 다단계와 달리 제이유 사업자들은 물건을 사놓고 찾아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사기성 짙은 유사수신업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사업자들도 자신의 피해를 자초한 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