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갈비는 그렇다 치고…. 콩나물 무침과 어묵 볶음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뉴욕에 온 지 반년 조금 넘은 기자도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뜨거운 게 울컥 치밀어 올랐다. 세상 어디에 있든, 아들이 얼마나 잘났든 ‘코리안 맘(Korean Mom)’의 마음은 똑 같았다.
“아이가 오면 우리 한국 음식을 해줄 거예요. 갈비, 콩나물, 튀김, 어묵 같은 거…. 얘가 좋아하니까요.”
5일(현지시간) 미국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인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슈퍼볼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하인스 워드(30·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어머니 김영희(55) 씨. 다음 날인 6일 조지아 주 애틀랜타 부근 맥도너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김 씨는 심한 감기몸살을 앓고 있으면서도 기자의 전화를 뿌리치지 않았다.》
“가슴이 떨려서 경기장에는 못 갔어요. 아이가 어제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는데 무척 기분이 좋은 목소리였어요. ‘엄마, 우리 팀이 우승했어’라고 하더군요. MVP 받은 얘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죠.”
이날 아침 ABC TV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해서도 그는 “MVP 수상은 팀 전체에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엄마 앞에서도 요란을 떨지 않았다.
“아이한테 겸손하면서도 자부심을 가지라고 늘 얘기했어요. 그 때문인지 일찍부터 철이 들고 자립심이 강했지요.”
딸만 둘인 편모 가정에서 자라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든 김 씨였다. 미군 상대 나이트클럽에서 회계를 맡다 스물다섯 살에 다섯 살 아래의 미군을 만나 결혼하고 미국 땅을 밟았다. 그 뒤 낯선 땅에서 이혼을 하고 힘들게 살아온 그의 이야기는 이제 미국 땅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드물다. 한 신문은 “세 가지 포지션을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워드의 열정은 아들을 위해 하루 세 가지 일도 마다않은 어머니에게서 온 것”이라고 썼다.
아들은 엄마한테 ‘눈물’도 물려받았다. 지난 시즌 AFC 챔피언 결정전에서 패한 뒤 팀 동료 제롬 베티스가 풋볼을 그만두려하자 눈물로 만류했다. 그 눈물은 이후 팬들의 입에 내내 오르내렸다. 그런 그의 눈이 시도 때도 없이 눈물로 젖는 순간은 바로 엄마 얘기를 할 때다.
검소함도 물려받았다. 지난해 9월, 4년간 2850만 달러(약 280억 원)라는 고액에 지금의 피츠버그 스틸러스 팀과 계약하면서 엄마한테 새 집과 벤츠를 선물했다. 하지만 그 자신은 시장에서 산 3달러짜리 티셔츠를 계속 입고 다니며 ‘블루칼라 스포츠스타’로 불렸다.
이제 미국 최고의 스타를 아들로 둔 엄마 역시 더는 가난하지 않다. 힘들게 아들을 키울 때도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았다. 김 씨는 “열심히 일한 결과 남보다 넉넉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일주일에 다섯 차례는 근처 고등학교에 출근해 식당일을 한다. “일할 수 있는데 놀며 지낼 필요가 있나요.”
힘든 삶을 살아왔지만, 그녀는 미국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기 위해 저소득층 이민자에게 주는 미국 정부의 지원도 받지 않았다.
궁금한 게 있었다. 바로 아들 워드의 오른팔에 새겨진 한글 이름, 그 아래 빙그레 웃음을 머금고 있는 미키 마우스 그림이었다. 왜 미키 마우스일까?
“아무리 어려워도 미키 마우스는 웃고 있기 때문에 좋아한대요. 왜, 다른 선수와 심하게 부딪쳐도 우리 아이는 항상 웃잖아요.”
고된 생활 속에서도 아들을 향해서만은 환하게 웃던 엄마, 그리고 그 엄마의 모습을 닮은 웃음. 아들은 이제 그 웃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 하고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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