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구름너머 2006. 7. 3. 09:57
10억분의 1m ‘나노’입자 뇌·폐세포 거침없이 뚫어
너무 작아 인체 보호막 쉽게 통과 크기 작아질수록 표면적 넓어져 독성…
세계 각국, 앞다퉈 위험성 연구 나서 국내도 나노 작업장 대책 서둘러야

작아질수록 강해지는 세계가 있다.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에 불과한 나노미터(㎚, 10억분의 1m) 세계를 다루는 나노기술이다. 입자가 작아질수록 표면적은 더 늘어나 화학반응력이 강해지며, 물 분자 하나가 겨우 통과하는 탄소나노튜브는 어떤 금속보다 강하고 전기가 잘 통한다. 그러나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던 이 작은 입자들은 인체의 보호막마저 쉽사리 통과해 예상치 못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선크림이 신경손상 유발?

미 연방정부 환경보호국(EPA)의 벨리나 베로네시 박사는 최근 ‘환경과학기술’지에 자외선 차단용 선크림에 들어가는 산화티타늄 나노입자가 뇌신경을 손상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산화티타늄은 선크림 외에 치약이나 페인트에도 사용되며 보통 흰색을 띠지만 나노입자로 만들면 투명해진다. 때문에 나노입자가 들어간 선크림은 발라도 창백한 느낌을 주지 않아 인기를 끌고 있다.

연구팀은 생쥐의 뇌신경을 보호하는 면역세포(microglia)에 이 물질을 주입했다. 세포는 바로 활성산소를 분비해 이 물질을 공격했다. 문제는 1시간 이상 티타늄산화물에 노출될 경우 활성산소가 지나치게 분비돼 주변의 뇌신경세포마저 손상시킨다는 것.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 같은 뇌질환은 신경세포가 활성산소에 의해 손상됐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 태울지도 모르는 일이다.

◆선진국들 위험연구에 대규모 투자

나노입자가 생명체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미국 로체스터대의 귄터 오베르되스터 교수는 20㎚ 크기의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TFE)’ 나노입자를 쥐에게 15분 동안 흡입시켰더니 4시간 만에 죽었다고 보고했다. 이 물질은 ‘테플론’이라는 상품명으로 프라이팬 코팅재, 우주복, 인공심장판막 등에 사용되는데, 덩어리 상태일 때는 해가 없다가 나노입자가 되면서 독성이 생긴 것이다. 식물도 예외는 아니다. 작년 11월 미 뉴저지공대 다니엘 와츠 교수는 내마모성 투명코팅제로 사용되는 산화알루미늄 나노입자가 옥수수·배추·콩 등 식물의 성장을 저해했다는 연구결과를 ‘톡시콜로지 레터스’에 발표했다.

나노입자가 위험한 것은 크기 때문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입자들은 뇌로 들어가지 못하지만 크기가 작은 나노입자는 막힘이 없다. 크기가 작아 기도에서 걸러지지도 않고 바로 폐세포로 들어간다. 게다가 크기가 작아질수록 화학반응을 하는 표면적이 넓어져 없던 독성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나노기술의 위험성 연구’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올해 전체 나노분야 연구개발 예산(10억5400만달러)의 3.7%에 해당하는 3850억달러를 인체환경영향 평가에 배정했다. EU도 2002~2006년 나노 분야 전체 예산(15억8000만달러)의 5%인 7900만달러를 인체환경사회에 미치는 영향 평가에 배정했다.

◆국내 대응은 미흡

반면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나노기술 중 가장 위험성이 큰 분야는 나노 소재다. 그럼에도 나노소재기술개발사업단은 따로 위험성 연구를 하고 있지 않다. 더욱이 올해 진행되고 있는 나노소재기술영향평가는 원천기술의 확보 방안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줄기세포 연구비의 일부를 생명윤리연구에 쓰도록 한 것처럼 나노기술 연구개발비의 일부를 위험연구에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행히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내년부터 의료용 나노기술에 대한 위험성 평가연구에 10억원 이상을 투입할 예정이다. 환경부도 건강영향평가제를 실시해 나노기술의 유·무해성이 최종 입증되기 전까지 유해한 것으로 보고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더 빨리 움직여야 할 곳은 과학기술부와 노동부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생활환경시험연구원 유일재 박사는 “나노물질을 다루는 근로자와 연구자들은 나노입자를 흡입할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에 작업장 안전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조사가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탄소나노튜브속을 메탄가스가 통과하는 상상도. 나노기술은 환경오엽물질 제거에 이용될 수 있으나 잘못되면 환경과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사이언스 제공
국가별 나노기술 위험성 연구 투자

● 미국: 2006년 나노분야 총 예산 10억5400만달러. 3.7%인 3850만달러 인체·환경 영향평가에 배정

● 일본: 2006년 나노기술인프라 구축에 20억5000만달러 투입. 2007년까지 1억2000만달러 위험성연구에 투자

● EU: 2002~06년 나노분야 총 예산 15억8000만달러. 5%인 7900만달러 인체·환경·사회 영향 평가에 배정

● 영국: 2005년 환경식품농업부 나노입자 위험성 검증 연구에 870만달러 투자 계획 발표

이영완기자 ywlee@chosun.com
입력 : 2006.07.03 00:4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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