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구름너머 2004. 9. 10. 14:07

기사 분야 : 경제

등록 일자 : 2004/09/07(화) 18:31

[퇴출이후…무너진 중산층]<3>위기의 중하층

<<동화은행 퇴출 직원 중 조사대상 229명의 절반가량인 105명(45.9%)은 현재 연간 소득이 6년 전보다 줄어들었다. 이들 가운데 93명은 재산 자체가 감소했다. 자산보다 빚이 더 많은 사람도 18명이다. 빈곤층으로 추락한 45명(본보 9월 7일자 A5면 참조)을 ‘삶의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 병사로 비유한다면 이들 105명은 가벼운 상처를 입은 병사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상처를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야 할 이들이 최근의 내수 불황으로 갈수록 상처가 덧나면서 중환자로 변해 간다는 점이다.>>

특히 비정규직(61명)과 자영업자(17명)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들의 소득은 경기에 따라 진폭이 심하다. 더욱이 비정규직은 회사가 어려워지면 언제든지 퇴출될 수 있다. 지금처럼 불황이 계속되면 상당수가 빈곤층으로 한 단계 더 미끄러질 위기에 있다.

그나마 정규직에 취직한 27명은 은행에 다닐 때보다 임금은 낮지만 희망의 싹을 키워 가고 있다.

▽미끄럼틀 오르기=서울 시내 지점의 과장으로 일하다 퇴출 당한 박모씨(47). 지난 6년의 세월은 그의 성격과 외모까지 바꿔 놓았다. 도전적인 성격은 폐쇄적이고 음울하게 변했다. 180cm의 키가 믿기지 않을 만큼 등이 굽었고 머리는 백발로 변했다.

이혼과 재결합, 부부가 힘을 모아 개업한 강원도 토속음식점과 보습학원의 잇따른 실패, 스트레스 때문에 갑상샘암에 걸린 채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는 아내, 대학등록금이 없어 휴학을 하고 학비를 버는 아들과 딸, 가출한 중3짜리 막내….

이씨는 한 달 전부터 채권추심회사에서 연체 카드회원에게 빚을 독촉하는 일을 하고 있다. 연체자가 갚는 빚의 40%는 그의 몫. 요즘 한 달 소득은 150만원가량이다. “신용불량자가 신용불량자를 괴롭히는 일이 너무 괴롭지만 아내를 생각하며 참습니다.”

비정규직 중 박씨처럼 채권추심 업무를 하는 사람이 24명으로 가장 많고 중소기업 12명, 제2금융권 6명 등이다. 이들은 자영업이나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뒤 비정규직으로 건너오거나 퇴출 이후 줄곧 직장을 옮겨 다닌 사람이 대부분이다.

비정규직은 소득도 낮지만 직장의 안정성이 떨어진다. 이들은 6년간 3∼6회 직장을 바꾸었다. 정모씨(49)의 경우 현재 일하는 카드회사가 10번째 직장이다.

퇴출 후 4번째 직장인 H저축은행에서 6개월 계약직으로 일하는 박모씨(49)는 “삶의 의지를 꺾는 것은 현실의 궁핍함보다 열심히 살아도 기대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가파른 미끄럼틀을 오르는 느낌”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부도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와 개인사업자들=중하층에 속한 자영업자들은 부동산컨설팅, 공인중개사, 농산물 유통, 식당, 골프숍, 환전소 등을 하고 있다. 개인사업자들은 디자인 사무실이나 중소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본인은 환전소, 부인은 커피숍을 하면서 서로 자는 얼굴밖에 못 볼 정도로 바쁜 임모씨(46) 부부. 은행 재직시절 술에 취하면 “2차는 내가 쏜다”며 동료들을 끌고 갔던 그. 요즘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혼자 술을 마실 정도로 ‘짠돌이’가 됐다. 하지만 쌓이는 것은 부채뿐이다.

임씨는 “안간힘을 쓰지만 자꾸만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몸무게가 갑자기 6kg가 빠질 정도로 이상 신호가 왔지만 병원에 가지 않았다. 대신 가족들의 이름으로 생명보험을 2개 가입했다.

자영업자나 개인사업자들은 대부분 “퇴출 직후보다 요즘이 더 어렵다”고 호소했다. 농산물 유통업을 하는 이모씨(36)는 “밑바닥 인생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일해서 이제 농산물유통 전문가라고 자부할 수 있는 수준이 됐는데 불황이 닥쳤다”며 “아무래도 2년간은 어려움을 각오해야 할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서울대 출신으로 퇴출 후 고시공부, 보험설계사, 학원 강사를 거쳐 금년 5월부터 지방 중소도시에서 보습학원을 운영 중인 이모씨(38)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던 학벌까지 팔아 학원을 열었는데 예상보다 매출이 떨어진다”며 “집사람 이름으로 은행에서 4000만원을 대출받아 어렵게 연 학원인 만큼 부담이 더 크다”고 말했다.

▽희망의 싹을 키우는 정규직=중하층에서 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는 27명은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에 비해 사정이 훨씬 낫다. 이들은 주로 중소기업이나 제2금융권에서 일하며 27명의 평균연봉도 3280만원으로 가장 높다. 비정규직 67명의 평균소득은 2920만원이며 자영업이나 소규모 회사를 운영하는 17명의 평균연봉은 2960만원.

퇴출 직후 바로 정규직으로 옮겨 간 사람은 1명뿐이며 대부분은 비정규직을 떠돌다가 정규직을 찾아서 안착하거나 자영업을 하다가 실패한 후 지인들의 도움으로 직장을 잡았다.

2002년 말부터 지방의 한 신용협동조합에서 차장으로 일하는 김모씨(37)는 취재팀과 만나 “지금의 연봉 3000만원도 정말 만족한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퇴출 후 아파트를 처분해 K대 앞에서 레스토랑을 하다가 문을 닫았다. 재기하기 위해 시작한 옷가게도 장사가 안돼 자본금을 모두 날리고 결국 홀로 사는 노모 집으로 들어갔다.

김씨는 “계속 장사를 했다면 다른 동료들처럼 회복할 수 없는 처지가 됐을 텐데 천우신조로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 행복하다”며 “더 어렵게 살던 시절을 기억하며 차근차근 한 발짝씩 나아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외식하자 조르는 철부지 아들에게 대리운전 나간다고 어찌 말하겠나"▼

동화은행 퇴출자들은 지난 6년간 ‘가장 괴로웠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 자식들과 관련된 일화를 꼽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대리운전으로 월 100만원씩을 버는 김모씨(36)는 “‘베니건스’(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자고 조르는 초등학교 2학년 아들에게 ‘부대찌개가 더 맛있으니 그리로 가자’고 말할 때 가슴이 미어졌다”고 말했다.

고려대 공대를 졸업하고 전산부에 근무했던 김씨는 얼마 전까지 사무실 전산망을 구축해 주는 프리랜서로 일했지만 일거리가 워낙 없어지자 운전대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저녁에 출근할 때 자녀들에게는 “개인연구소에서 밤샘 작업 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퇴출 당시 과장이었던 박모씨(42)는 “지역의료 보험료가 연체돼 애가 아픈데도 병원에 가지 못했을 때 내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다”고 말했다.

빚보증에 얽힌 금전관계 때문에 친했던 은행 동료와 사이가 멀어지거나 동업, 창업과정에서 ‘배신’이나 ‘사기’를 당했던 순간을 꼽은 이들도 적지 않다.

서울 시내 지점장 출신으로 실직상태인 김모씨(54)는 “퇴출 후 직장 동료들과 채권추심회사를 차렸다가 배신을 당해 금전적 손해가 컸다. 그땐 총이 있으면 다 쏴 죽이고 나도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퇴출은행원은 왠지 부도덕할 것 같다’라는 이유로 재취업 기회를 박탈당했을 때 “모멸감을 느꼈다”고 답한 이들도 상당수다.

40대 중반 이상에서는 “경조사 때가 가장 서럽다”는 응답이 많이 나왔다. 지점장 출신인 이모씨(57·공인중개사)는 “5월 초 동료 부친 상가에 갔더니 문상객이 5명도 되지 않아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며 “문득 올해 가을 예정인 내 딸 결혼식 때도 올 하객들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쏟아졌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답한 사람도 많다. 현재 실업상태인 이모씨(42)는 “퇴출 당시는 그래도 젊은 나이였고, ‘어떻게 잘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차린 식당이 망하고, 연금 보험 적금을 깨고 담보대출도 한계까지 쓴 지금은 정말 견뎌내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중하층 105명의 현재 상황

비정규직(61명)정규직(27명)자영업 및 개인사업(17명)
당시 직책행원 14, 대리 14, 과장 13, 차장 11, 지점장 9행원 10, 대리 7, 과장 5, 차장 4, 지점장 1행원 1, 대리 5, 과장 4, 차장 4, 지점장 3
6년 전 연평균 소득 4900만원4730만원5120만원
현재 연평균 소득2920만원3280만원2960만원
현재 직업채권추심 24, 중소기업 12, 보험설계사 2, 부동산컨설팅 2, 전산 프리랜서 1, 자산관리공사 4, 신용회복위원회 3, 예금보험공사 7, 제2금융권 6중소업체 10, 제2금융권 9, 전산직 3, 서비스업 2, 회계사 1, 공무원 1, 카드사 1IT벤처, 보습학원, 부동산컨설팅, 전산소모품 유통, 농수산물 유통, 제2금융권, 환전소, 구인구직업, 식당, 골프도구점, 이동통신 대리점, 전문지
현재의 삶이 우울하거나 절망적이다56명(91.8%)17명(63.0%)12명(70.6%)
평균 연령44.5세41.7세47.5세
이직 횟수평균 3.3회2.7회2.1회
설문 대상자 229명 전체의 평균연령 43.7세, 중하층 105명의 평균연령 44.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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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이병기기자 eye@donga.com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김상훈기자 sanhkim@donga.com

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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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름너머 2004. 9. 10. 14:06

기사 분야 : 경제

등록 일자 : 2004/09/06(월) 18:45

[퇴출이후…무너진 중산층]<2>중산층에서 新빈곤층으로

《몸이 건강하고 적극적인 마인드가 있는데 중산층에서 월 소득 115만원 이하의 ‘빈곤층’으로 급전직하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 쉽다. 취재팀도 그랬다. 그러나 빈곤층으로 확인된 45명(비정규직 9명, 자영업 및 개인사업 16명, 실업 20명)의 삶의 행로를 따라가다 보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피상적인 편견이었는지 깨닫게 됐다. 구멍 뚫린 사회안전망과 재취업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정글 같은 사회에서 한두 번의 실패는 곧장 빈곤층으로 연결된다.》

빈곤층으로 떨어진 45명의 삶은 크게 두 가지의 길을 걸어왔다. 퇴출 직후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정규직 재취업이 봉쇄된 채 비정규직을 전전해온 이들이 하나. 또 식당, 독서실, 택배업, 공인중개사, 인쇄업 등 가게나 소규모로 창업한 회사가 부도 직전에 있거나 이미 실패해 비정규직으로 옮겨가거나 실업자로 전락한 사람들이다.

▽‘은행원의 특권’이 족쇄로=외환전문가였던 박모씨(41). 보증을 잘못 서 퇴출 이후 떠안은 빚이 7000만원이나 돼 신용불량자가 됐다. 박씨를 데려가려던 국민은행도 신용불량자 채용은 곤란하다며 돌아섰다. 결혼을 약속했던 중학교 교사도 떠나보냈다.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득해 속칭 ‘떴다방’을 따라다녔지만 벌이가 신통치 않았다. 전화기 도매점도 차려보고 친구와 애견센터도 해봤지만 모두 실패했다.

신용불량자만 안됐다면 박씨는 지금쯤 연봉 7000만∼8000만원을 받는 차장급 은행원에 중학교 교사와 단란한 가정을 꾸렸을 것이다. 현실의 그는 아직도 미혼이며 홀로 사는 노모(67)에게 얹혀산다.

박씨처럼 퇴출 당시 30대 중반 이하의 젊은 직원들이 빈곤층으로 추락한 이유는 ‘은행원의 특권’이 퇴출 후에는 족쇄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동화은행을 포함해 당시 시중은행들은 직원들에게 전세금(3500만원)은 무이자로, 주택구입자금은 시중금리인 연12%보다 훨씬 낮은 1∼2%에 빌려주었다. 또 직원들에게 우리사주를 살 것을 장려하면서 수천만원씩을 빌려줬다. 직원들은 동료나 친구의 대출보증을 기꺼이 섰다.

그러나 은행이 문을 닫으면서 동화은행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으며 빚을 갚을 여력이 없는 이들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퇴출 직후 동화은행에 빚이 있는 직원은 1486명이나 됐으며 액수는 307억원이었다. 다른 금융기관에 갚아야하는 빚도 많았다.

3000만원의 전세대출금이 있었던 부산 부전동 지점 행원출신 이옥진씨(36). 그는 6년간 비정규직을 전전하면서도 박봉을 쪼개 1165만원을 갚았지만 20%에 가까운 연체이자 때문에 아직도 빚이 4100만원이다. 그동안 빚을 못 갚아 형사고소를 당한 직원만 40명이 넘고 교도소에서 실형을 산 직원도 3명이다.

▽‘퇴출자의 무덤’ 자영업=45명 중 퇴출 당시 40대 중반 이상의 차장과 지점장급이 대부분이던 16명은 자영업이나 창업을 시도했다.

그러나 세상은 은행원 시절에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사기를 당한 사람들도 상당수. 모두 자본금을 소진하거나 빚만 커지는 실패를 맛보거나 부도 직전의 상태에 있다.

대구에 24시간 편의점을 차려 몇 달 동안 재미를 봤던 이모씨(42)는 주위에 갑자기 편의점 10개가 생기면서 매출이 격감해 문을 닫았다. 의류가게를 하던 부인 사업도 경기 때문에 기울고, 경제문제로 다툼이 잦아지며 최근 이혼절차를 밟고 있다.

퇴출 전만 해도 ‘임원1순위’ 지점장으로 꼽혔던 김모씨(54). 지난해 큰 맘 먹고 권리금 2억원에 중개업소를 인수했지만 6개월 동안 전세계약서 1통만을 썼다. 김씨는 “점심때 도시락을 가져오는 집사람 말고는 사무실을 찾아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한숨지었다.

지점장을 지낸 박모씨(58)는 퇴직 후 2년간 사채업에 손을 댔지만 빚만 2억원이 생겼다. 박씨는 “다른 사채업자들과 달리 나이도 많고 ‘욕’도 못한다고 소문이 나서 악성연체자들이 빚을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작년에 “노후보장이 된다”는 말을 듣고 은행 동료들과 1억600만원을 모아 ‘굿모닝 시티’ 상가를 분양받았으나 시행사의 부도로 요즘은 반값에 매물로 내놔도 팔리지 않고 있다.

재직시절 법인영업을 담당, 고급술집 접대를 많이 해본 박모씨(44)는 퇴출 직후 술집을 차렸다. 은행원 시절에 생각한 술집은 쉽게 돈을 버는 것으로 보였다. “몸만 낮추면 잘될 줄 알았죠. 그러나 술집 접대부 관리나 외상값 받아내기 등 나름대로 노하우가 필요한 부분을 제가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박씨는 빚만 4억원을 지고 술집을 포기했다.

▽결국 비정규직이나 실업으로=신용불량자나 자영업에 실패한 이들을 받아준 곳은 채권추심회사나 다단계 회사 등 비정규직뿐이었다. 수도권 지점 차장이었던 이모씨(51)는 암웨이, 웅진코웨이 등 유명 다단계 회사를 두루 돌아다녔지만 2년을 못 가 손을 들었다.

“정수기 샴푸 세제 등 아이템을 바꿔가며 주로 친지나 친구들에게 제품을 팔았지만 아는 사람이 더 이상은 사주지 않는 ‘낙엽’ 신세가 되면서 업계를 떠났습니다.” 이후 대부업에도 손을 댔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 이씨는 4억원에 이르던 재산을 모두 날리고 빚만 3000만원 쌓인 신용불량자다.

최악의 상황에 내몰리면서 공사판 막노동, 대리운전, 술집 웨이터, 대리운전사로 연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신빈곤층으로 추락한 이들 상당수는 삶의 의욕을 포기했다. 연세대 법대를 졸업한 박모씨(46)는 현재 위암에 걸려 위장을 70%나 잘라냈지만 매일 술로 하루를 보낸다. 취재진이 “자꾸 술을 드시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그는 “요즘 같아서는 별로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짧게 말했다.

▼‘무너지는 가족’ 가장 뼈아프다▼

몇 차례 실패를 거듭하면서 빈곤층으로 추락한 사람들은 삶의 의지를 잃어간다. 결국 가족이 해체되거나 균열상태에 이른다.

주말이면 가족끼리 손을 잡고 놀러가고, 가장 큰 걱정이 승진과 자식들 대학입학이었던 중산층의 생활이 이제는 꿈이었던 것처럼 아득하게 멀어져 간다.

지점장 출신 김모씨(53)는 퇴출 직후 채권추심사업을 시작했지만 동료들이 회사 돈을 횡령해서 도망가는 바람에 사업을 접었다. 김씨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 5000만원을 빌려 줬던 처가와 부인 친구, 친척들도 이제는 싸늘한 눈길로 그를 쳐다본다.

돈 문제로 부부끼리 험한 소리를 많이 주고받다 보니 가슴은 상처투성이다. 별거에 들어간 지 1년이 넘었다. 부인은 파출부로 일하며 한 달에 150만원가량을 벌어 자식들을 부양하고 있다.

45명 중 별거 중인 이가 6명이고 이미 이혼한 사람도 있다. 자식들이 결혼한 뒤 이혼을 하기로 합의한 부부도 있다.

자식들의 퇴출은 필연적으로 부모의 가정도 흔들어 놓는다.

퇴출된 장모씨(30)의 아버지는 아들의 부채를 고향 땅을 담보로 갚아주고 아들에게 18평 아파트 전세를 얻어줬다. 그러나 재혼한 부인은 “나와 상의도 없이 전처 자식에게 돈을 줬다”며 반발했고 아버지는 끝내 이혼했다.

2세들에 대한 정상적인 교육이 어려워지면서 일부 가정에서는 ‘빈곤의 세습화’의 조짐도 보인다. 퇴출 가정의 상당수 대학생들이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로 학자금을 벌거나 군대를 갔다.

지점장 출신 이모씨(57)는 큰아들이 미국에서 유학하던 때에 퇴출을 당했다. 이씨는 아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공부를 마치고 대신 취직한 뒤 네 동생 학비는 책임지라”며 아파트를 담보로 빚을 내 2년간 유학비를 댔다. 그러나 작년에 귀국한 큰아들은 아직도 취직을 못했다. 결국 둘째는 휴학을 하고 군대에 갔다.

빈곤층으로 추락한 사람들은 집안이 기울고 부부간에 불화가 생기면서 자식들이 빗나가는 것을 볼 때 가장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모든 스트레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도록 몰아간다. 전체 조사 대상자 중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32.3%. 빈곤층은 두배 가까운 60%(27명)나 된다.

新빈곤층 45명의 현재 상황

자영업(16명)비정규직(9명)실업(20명)
당시 직책지점장 3명, 차·과장 10명, 대리 이하 3명차·과장 3명, 대리 이하 6명지점장 6명, 차·과장 7명, 대리 이하 7명
퇴출당시 연평균 소득 5750만원4300만원5470만원
현재 연평균 소득514만원850만원대출, 부인의 부업, 부모의 도움으로 생활
퇴출 당시 자산평균2억6000만원1억2400만원2억5530만원
현재 자산평균250만원375만원8830만원
신용불량 경험 있다25%(16명 중 4명)33.3%(9명 중 3명)35%(20명 중 7명)
현재 직업공인중개사, 편의점, 인쇄소, 단란주점, 분식집, 제과점, 휴대전화대리점, 고철상, 건강기구 판매점 등 운영채권추심, 은행·제2금융권 대출영업직, 대리운전, 건강식품 영업직 등 근무

심각한 가족불화 겪었다(현재도 포함)56.2%(16명 중 9명)별거 중 2명77.7%(9명 중 7명)별거 중 1명65%(20명 중 13명)이혼 1명, 별거 중 3명
자살 생각한 적 있다62.5%(16명 중 10명)44.4%(9명 중 4명)60%(20명 중 12명)
설문대상자들의 퇴출 당시 평균연봉은 지점장 7300만원, 차장 6000만원, 과장 5000만원, 대리 4400만원, 행원 3300만원이었음.

▼특별취재팀▼

이병기기자 eye@donga.com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김상훈기자 sanhkim@donga.com

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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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름너머 2004. 9. 10. 14:04

기사 분야 : 경제

등록 일자 : 2004/09/05(일) 18:47

[퇴출이후…무너진 중산층]<1>6년간의 인생유전

《“깨지기 쉬운 유리병 같은 것이 중산층의 삶입니다. 다만 자신에게 현실로 닥치기 전에는 실감하지 못할 뿐이죠.”(박선철 전 동화은행 노조위원장) 동화은행 직원들의 6년간 삶의 행로는 ‘극과 극’이다. 퇴출 직후 각 금융기관에서 은행 재직 시절에 진 빚을 갚을 것을 요구받고, 자력으로 또는 부모나 형제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느냐 여부에 따라 첫 갈림길이 결정됐다. 주택 관련 대출, 우리사주용 대출, 보증 등으로 부채가 많은 28∼35세의 젊은 직원 중 상당수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비정규직을 떠돌면서 ‘제2의 삶’을 모색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소득이 6년 전에 비해 떨어진 직원이 65.5%에 이르고 62명이 자영업에 도전했지만 성공한 직원은 7명(11.3%)에 불과하다.》

▽중산층에서 신(新)빈곤층으로=본점 자금부 대리였던 황규영씨(40). “은행에 다닐 때 신용불량자를 보면 ‘얼마나 못났으면 저렇게 될까’ 생각했죠. 이제는 제가 신불자입니다.”

그는 5월 자신이 운영하던 휴대전화 액세서리 생산업체가 부도가 났다. 두 달 전부터 서울의 한 일식집에서 접시를 닦고 있다. 월급은 60만원.

황씨처럼 연수입이 1380만원 이하로,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사람은 45명. 이 중 직업이 없는 20명은 대부분 자영업이나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경우. 지점장 출신인 최모씨(55)는 옷가게, 갈비집, 노래방이 잇따라 실패하면서 10억원의 재산을 모두 날렸다. “사업을 위해 4억원에 처분한 강남의 50평형대 아파트만 가지고 있었어도 재산이 두 배로 늘었을 것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16명의 자영업자나 개인사업자들도 부도 직전 상태. 주위에서 “깡패가 다 됐다”는 소리까지 들어 가며 경기 부천시에서 노래방을 하며 억척스럽게 살았던 박모씨(44). 1년반 전에 노래방을 내놨는데도 팔리지 않아 빚만 3억원이 넘게 쌓였다.

하루벌이가 안되면 당장 밥을 굶어야 하는 극한상황에 이른 비정규직도 9명이다. 대리운전이나 막노동으로 끼니를 잇는 이들도 있다.

▽위기의 중하층=행원 부부였다가 모두 퇴출된 김모씨(40) 부부. 은행 콜센터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부인과 의류 땡처리 회사에서 일하는 김씨의 월급을 합쳐서 한 달 소득은 200만원.

김씨는 정식직원이 아니다. 보증으로 생긴 빚 4000만원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됐기 때문에 정식으로 취업을 하면 월급에 압류가 들어온다. 휴대전화도 부인 이름으로 등록돼 있다. 한때 서울 강남구 신사역 부근에서 포장마차를 했지만 심한 허리 디스크가 생겨 포기했다.

105명의 중하위 계층 대부분은 김씨와 비슷한 처지로 현재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최근의 내수불황은 하강 압력을 더욱 가중시킨다. 이들 중 6년 전에 비해 재산이 감소한 사람이 93명. 재산이 아예 없고 빚만 있는 사람도 18명이나 된다.

중하위 계층에서 비정규직 종사자는 61명. 퇴출 직후 신용불량자가 돼 줄곧 저임금의 비정규직에 근무하거나 식당, 오락실, 문방구점, 미장원, 영세학원 등 자영업에 실패한 뒤 비정규직으로 건너온 이들이다. 채권추심, 카드사, 다단계판매 등 실적에 따라 월급을 받는 직종이 대부분이다. 정규직도 27명이지만 대부분 임금이 낮고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한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현상 유지=은행원 시절보다는 못하지만 중산층의 삶을 유지한 47명 중 정규직은 27명. 이들은 퇴출 당시 부채가 적었거나 부모나 형제의 도움으로 부채를 갚아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았으며 재취업에도 성공했다. 증권사나 카드사, 캐피털 등 금융회사나 IBM, 삼성SDS 등 대기업 및 탄탄한 벤처기업으로 옮겼다. 이 중 4명은 다시 경찰, 소방서, 공기업 직원 등 임금은 다소 적지만 안정적인 직업을 다시 얻었다.

비정규직 11명은 대부분 전산부에 근무했던 직원들로 정보기술(IT)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자영업이나 개인사업을 하는 9명은 불경기를 맞아 다소 불안정한 상태다.

▽향상 그룹=지점장 출신인 정모씨(49)는 퇴출 후 바로 증권회사로 옮겼고 이사까지 승진했다. 정씨처럼 정규직으로의 재취업이 순조로웠고 승진도 거듭한 사람은 18명에 이른다. 은행 근무 시절 쌓은 금융이나 IT 관련 노하우로 높은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이 3명이다. 이들 중에는 부동산 값 상승으로 재산을 크게 늘린 이도 있다.

채권추심회사나 전산아웃소싱업체를 차려서 성공하거나 자영업을 일군 사람도 11명에 이른다. 직업도 없이 고생하다가 맨주먹으로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무역업과 식당으로 성공한 원용주씨(48)는 인생 역전의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별취재팀

▼빚쟁이 피해 잠적…막노동 떠돌기도▼

본보가 퇴출 당시 동화은행 노조가 갖고 있던 명부와 지난해 이들이 새로 만든 주소록을 대조해 본 결과 당시 임직원 중 400여명은 현재 소재 파악이 잘 되지 않고 있다.

우선 사망자가 7명 있다. 사고와 질병으로 죽은 사람도 있지만 자살한 사람도 있다. 지점장 출신 A씨는 주변 친지와 동료 행원들의 돈을 끌어모아 사채업을 시작했다가 부실채권 회수가 되지 않아 부도가 나자 3년 전 끝내 자살을 택했다. 지인들에 따르면 A씨의 부인은 그 사건 이후 강남의 아파트 상가 사무실 청소용역으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캐나다 호주 미국 등으로의 이민자도 30여명 있다. 캐나다에 갔다가 최근 다시 한국으로 역(逆)이민 온 정석기씨(44·본점 카드사업부 근무)는 “특별히 잘되거나 망한 사람들 이야기는 못 들었다”며 “본인 비자는 잘 나왔는데 가족들 비자가 나오지 않아 혼자 1년반 정도 미국에서 허송세월한 사람도 있는 등 초기에 시행착오를 겪은 사람은 많다”고 말했다.

연락이 안 되는 사람은 대부분 극도의 궁핍함으로 사회생활이 어려운 사람이거나 어쩔 수 없이 빚을 연대보증인인 동료에게 떠밀고 자취를 감춘 사람들.

본점 총무부에 근무했던 고기엽씨(44)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동료가 얼마전 5만원만 줄 수 없겠느냐고 전화해 왔다. 막노동으로 힘겹게 고생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송금해 줬다. 나도 퇴출 이후 자동차 광택 내는 일까지 해 봤는데 어떻게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없겠나”라고 말했다.

▼한보 부도에 치명타…1500명 실직▼

퇴출 소식이 알려진 1998년 6월 29일, 동화은행 노조원이 ‘정부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격문을 당시 서울 세종로 본점 농성장에 붙이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동화은행은 1989년 1월 이북 5도민 80만명이 2000억원을 출자해 만든 후발 시중은행이다.

‘제2의 신한은행 신화를 만들어내자’는 기치를 내걸고 창업 사원을 모집할 당시 시중은행 행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급여수준이 시중은행권 최고 수준으로, 같은 직급이라도 다른 시중은행보다 20%가량 많았다.

1994년에는 전국 주요 도시에 81개 점포를 낼 정도로 급성장했으나 97년 이후 한보철강 진로 미도파 등 거래 기업들이 잇따라 부도를 내면서 급속히 부실화됐다.

결국 98년 6월 29일 동남 대동 충청 경기은행과 함께 퇴출은행으로 선정돼 신한은행에 부채자산인수(P&A·고용 승계 없이 우량자산과 부채만 인수) 방식으로 넘겨졌다. 1831명의 직원 가운데 300여명은 신한은행으로 옮겨갔고 나머지는 뿔뿔이 생업전선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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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름너머 2004. 9. 10. 13:57

기사 분야 : 경제

등록 일자 : 2004/09/05(일) 18:22

[‘퇴출 날벼락’ 그 후]6년전 퇴출 동화은행 299명 ‘삶의 질’

《동화은행이 퇴출된 지 만 6년. 당시 중산층이었던 동화은행 직원들은 현재 5명 중 1명이 빈곤층으로 추락했다. 소득이 6년 전 임금보다 하락한 사람은 65.5%에 이른다. 정부가 제공한 재취업 교육을 통해 취업에 성공한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어 한국의 사회 안전망과 재취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본보 취재팀이 당시 만 28세 이상이던 동화은행 남성 직원 229명의 삶의 궤적을 직접 개별 인터뷰하거나 전화 설문조사를 통해 추적한 결과 나타난 것이다. 연락이 끊겨 직접 조사가 불가능한 직원과 인터뷰 거부자는 조사에서 제외됐다.》

동화은행은 1998년 6월 말 대동, 동남은행 등 다른 4개 은행과 함께 퇴출됐다. 이 여파로 당시 최상위 임금 근로자층에 속했던 직원 1500여명이 한꺼번에 직장을 잃었다.

취재팀이 조사한 229명은 소득을 기준으로 6년 전에 비해 △경제적 지위가 상승한 사람이 32명(14.0%) △현상유지 47명(20.5%) △하락 150명(65.5%)이었다.

특히 소득이 줄어든 150명 가운데 45명(20.5%)이 빈곤층으로 추락했다. 이들은 연간 소득이 1380만원 이하로, 전체 도시근로자 가구주 중 소득 최하위 20%에 해당된다.

취재팀은 퇴출 당시부터 2004년 6월 현재까지 소득 증가율이 같은 기간 도시근로자 가구의 평균 소득 상승률(41.8%)을 초과한 이들을 ‘경제적 지위 상승’으로 분류했다. ‘현상유지’는 소득이 6년 동안 변화가 없거나 올랐어도 평균 상승률 이하인 경우이며 ‘하락’은 소득의 절대 액수가 줄어든 경우를 말한다.

재산변화를 살펴보면 현재 재산이 6년간의 소비자 물가상승률(21.1%)을 감안한 액수보다 줄어든 사람이 응답자 203명 중 161명(79.3%)이며, 재산이 없이 빚만 진 사람도 23명(11.3%)이나 된다.

당시 동화은행 노조위원장인 박선철씨(44·인쇄업)는 “연락이 끊긴 수백명의 직원들은 경제적인 형편이 열악한 이가 대부분”이라며 “퇴출 직원들의 실제 생활은 훨씬 심각하다”고 말했다.

229명을 직업별로 살펴보면 비정규직이 84명으로 가장 많았고 정규직 73명, 자영업 52명, 실업 20명 순이다.

또 이들 중 62명이 식당, 호프집, 옷가게, 오락실 등 자영업으로 전환했지만 50명(80.7%)이 실패했고 성공한 사람은 7명(11.3%)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상유지는 5명(8.0%). 처음 문을 연 가게가 실패하면 2∼4회 또 다른 자영업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나 실질적인 자영업 성공률은 5%에도 못 미친다.

노동연구원 이시균 연구원은 “외환위기 이후 퇴출된 화이트칼라 계층 가운데 상당수가 신 (新)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이는 구멍 뚫린 사회안전망, 현실과 맞지 않는 재교육 및 재취업 시스템, 전문직 근로자를 육성하지 못한 은행문화, 퇴출 근로자에 대한 사회의 잘못된 인식, 자영업에 대한 잘못된 환상 등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이병기기자 eye@donga.com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김상훈기자 sanhkim@donga.com

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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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름너머 2004. 9. 8. 10:12
부동산 상식을 배워보세요.


http://my.dreamwiz.com/as115/REsang.htm
posted by 구름너머 2004. 9. 8. 09:50
아파트 관리비중 특별수선충당금은 집주인이 부담하는 근거(법규등) 알고 싶습니다.
평점 :
+ 3 (4 명)나도 평가하기tarzanmom 조회: 4967답변: 3
답변이 완료된 질문입니다. (2003-04-25 17:09 작성)신고하기
전 세입자인데 4월말에 이사를 가게되어 집 주인에게 그동안 아파트 관리비내역중

특별수선충당금으로 지불한 금액을 환불받고자 했으나

집주인이 줄수 없다고 하는데 ..

제가 신문에서 분명히 집주인이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을 본것 같은데

대법원 판례(?)인지 정확한 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질문자가 선택한 답변
주택건설 촉진법 제38조 2항
lkwonik (2003-04-27 11:24 작성)이의제기
주택건설촉진법 제38조의2 (특별수선충당금의 적립)

① 관리주체는 공동주택의 주요시설의 교체 및 보수에 필요한 특별수선충당금을 입주자로부터 징수하여
적립하여야 한다.
② 제1항의 규정에 의한 공동주택의 주요시설의 범위, 교체 및 보수시기와 방법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건설교통부령으로 정한다. <개정 97.12.13 법5454>
③ 특별수선충당금의 요율 · 사용절차 · 사후관리와 적립방법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본조신설 78.12.5>

위에서 말한 입주자란 아파트 소유자를 말합니다
관행적으로 계약서에 세입자가 특별수선 충당금을 내겠다는 약속이 없는한 전세기간동안 세입자가 내고 계약만료 후 집 주인에게 받아가는것이 관행입니다
먼저 계약만료가 되면 관리사무소에 가셔서 여지껏 내셨던 특별수선충당금내역을 떼어 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위에있는 법을 말씀드리세요 대부분 세입자들이 특별수선 충당금을 받지 않고 나가드라구요 저도 이번에 집을 비워 줘야하기 때문에 법대로 말하니까 되더라구요 주인이 통 무식쟁이(?)가 아니라면 우기지 않을겁니다. 그리고 한마디 더하세요 아파트살면서 관리비 내역도모르고 법도 모르고 사냐구요(속시원할겁니다)
참고로 소송이라도 하게되면 무조건 세입자가 이기죠. 공문과 판례에도 나와있으니 넘 걱정마세요.
또한 집주인과 만났을때 위 법내용을 프린터로 뽑아서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