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구름너머 2006. 11. 14. 18:12
'부동산 광풍'에 허탈감과 시름 깊어가는 서민들
20대 신입사원 “알뜰생활하고 재테크 백날 잘해봐야 집사는 것보다 못해”
30대 직장인 “전세금에 대출 1억 받아봤자 20평 아파트도 못사”
60대 은퇴자 “7억에 판 잠실아파트 3년만에 15억…6억에 산 강북 상가는 3억”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내 집 장만을 꿈꾸는 서민들과 젊은층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도 서울과 수도권 일대의 주요 아파트 가격은 ‘부동산 광풍(狂風)’이라고 불릴 만큼 껑충 뛰어올라버려 아주 저만치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 가격을 반드시 잡겠다는 정부의 호언장담과 관련 정책이 번번이 실패한 것으로 지적되면서 시민들의 불신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경기 억제 대책 발표를 하루 앞둔 14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공인중개업체의 매물 표시판이 텅 텅 비어있다. /뉴시스
◇ 어디서나 부동산이 화제…직장 내 갈등도 = 요즘 서울 소재 직장에서는 누구 집이 얼마나 올랐고 어떤 지역의 아파트값은 몇년째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는 등의 부동산 동향이 단연 최고의 화두(話頭)가 되고 있다.

한 직장에서 똑같은 월급을 받고 있지만 강남권에 집을 사둬 성공한 사례와 집값이 오르지 않은 다른 지역에 집을 사 재(財)테크에 실패한 사례가 심심찮게 비교되고 있는 것.

A씨는 양도세, 보유세 등으로 더 이상 집값이 오르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지난해 강북에 집을 마련했다가 집값이 전혀 오르지 않은 반면 A씨의 동료인 B씨는 몇년 전부터 살고 있는 과천 아파트가 최근 1달여만에 5억원이 올라 대비가 되고 있다.

이처럼 집값 급등으로 인해 부의 격차가 발생하거나 10년차 이상의 선후배 사이에서 부동산 자산 가치가 역전되는 사례로 인해 직장 내 분위기가 서먹해지거나 어색해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의 4천500만원짜리 전세방에서 살고 있는 직장인 장모(30)씨도 주변에서 쉴새없이 부동산 이야기를 꺼내고 있지만 그 때마다 짜증이 치밀어 올라 인상을 찌푸리곤 한다.

집을 사겠다는 목표로 2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그 사이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는 등 이리저리 비용이 드는 일이 많아 저축한 돈은 아직 2천여만원에 불과한 상태.

장씨는 “전세금을 돌려받아도 총 6천500만원밖에 안 된다. 여기에 대출을 받아봤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대출을 1억원 받으면 그나마 20평짜리 아파트 정도는 살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2억원을 훌쩍 넘어가버리니 너무 허탈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주위 직장 동료들은 모이기만 하면 부동산 이야기를 열을 올리며 대출을 받으라느니, 누구는 집을 사자마자 한달도 안돼 1억이 올랐다느니 신바람을 내 장씨를 더욱 허탈하게 한다.

그는 “나라 전체가 투기로 난리인데 한탕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데 대한 소외감이 느껴진다. 집 한칸 장만하겠다는 목표가 못 이룰 꿈이 돼가고 있어 짜증이 난다”며 “부동산 정책을 짜는 사람들이 강남의 어떤 집에서 살고 어떻게 재테크를 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등에 칼이 꽂힌 기분”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 정부 말만 믿었다가는 손해 = 회사에 다니다 은퇴한 김모(67)씨는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정부의 공언만 믿고 재테크 전략을 수정했다가 손해를 봐 후회가 막심하다. 공언(公言)이 공언(空言)이 됐기 때문.

도봉구 쌍문동에 거주하는 김씨는 퇴직을 앞둔 1990년대 초반 잠실 1단지 15평형 아파트를 구매했으나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투기지역 집값을 잡는다며 1가구2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줄이자 아파트값이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2003년 9월 당시로서는 최고 가격인 7억원에 이 아파트를 팔았다.

김씨는 세금을 떼고 남은 6억여원을 그대로 강북 지역의 상가에 다시 투자했으나 지금은 새로 투자한 상가 가격이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반면 7억원에 팔았던 잠실 아파트 가격은 3년만에 2배 이상인 15억원을 넘어선 상태다.

김씨는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막심하다. 노무현 정부의 말을 믿고 아파트를 팔고 다른 곳에 투자를 했는데... 더 이상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을 믿을 수 없다”며 “시장논리에 따라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는 게 아니라 시장을 통제하면서 부동산 값을 잡으려다보니까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정부의 말만 믿고 집값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시민들의 하소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작년 1월 전세 보증금 2억1천만원을 내고 강남구 역삼동 E아파트 23평형에 전셋집을 마련한 회사원 강모(33)씨는 지난 두달 간 집을 사기 위해 아내와 서울 시내 곳곳을 돌아다닌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낀다.

강씨 부부가 전셋집을 구할 때만 해도 집 주인은 아파트를 5억원에 사라고 제의했다. 재건축을 통해 새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는 역삼동 한복판에 자리잡은 이 아파트는 주거 환경이 탁월했고 아내는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자고 했다.

그러나 강씨는 8ㆍ31 부동산대책 때문에 1년 후 집값이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믿음’과 소형 평형이라는 단점 때문에 아내를 설득해 집을 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아파트는 8ㆍ31 대책을 비웃듯 1년새 소리없이 올라 현재 가격이 9억원까지 치솟았고, 강씨부부에게는 이젠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동경의 대상’이 돼 버렸다.

더 이상 기다리다가는 영영 집을 사지 못하겠다는 불안감에 빠진 강씨는 주말마다 부인과 함께 강북과 강남 곳곳을 돌며 집을 구하러 다녔다.

그러나 부부는 계약을 코 앞에 두고 집주인들이 매물을 회수하거나 가격을 수천만원씩 올리는 바람에 계약을 번번이 놓쳐야 했다.

강씨 부부는 약수동, 금호동, 봉천동, 흑석동 등 서울 시내 전역을 돌아다니며 집을 알아봤지만 터무니없이 높은 아파트 값에 망설이다가 결국 집 찾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어차피 지금 가격에는 대출을 한도까지 받아도 집값을 치를 수 없을 정도로 집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강씨는 “작년 아내 말을 듣지 않고 정부 말만 믿고 집을 사지 않은 것이 한이 된다”며 “정부의 실정 때문에 수많은 무주택자들이 상처를 받았는데도 남 탓만 하고 사과 한번 하지 않는 정부에 환멸을 느낀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난 2월 결혼한 대기업 사원 우모(32)씨도 결혼 직후인 올해 봄 광진구 광장동의 30평대 아파트를 살 계획이었지만 “집값이 안정세로 접어들었고 하반기에는 떨어질 것”이라는 정부 발표를 듣고 구매 시기를 미뤘다가 크게 후회할 뻔했다.

추석 전후를 기점으로 이 아파트 가격에 크게 뛰어오른 것. 우씨는 그제야 뒤늦게 백방으로 수소문해 봄에 알아본 가격에다 1억원을 더 주고서야 겨우 광장동 아파트를 계약할 수 있었다.

우씨는 “송파동에서 전세를 살다가 1주일 전쯤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이 내가 계약한 뒤로도 집값이 무섭게 뛰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1주일 전에 계약한 가격으로는 절대 살 수가 없다”고 전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혼이 난 우씨는 “집 한칸 마련하려고 여기저기서 빚을 냈는데 담보대출 금리를 올린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정부가 하라는 것과 반대로 하면 돈을 번다는 것이 정설이다. 여태껏 나온 정부 정책은 단기적인 효과는 거뒀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내 집 마련에 악영향을 줬다”고 꼬집었다.

회사원 김모(39)씨의 경우는 정부의 정책과 발표만 철석같이 믿고 기다리다가 안정된 보금자리를 찾지 못한 사례다.

김씨는 2000년 서울에서 부인의 직장이 있는 성남시 분당으로 이사한 뒤 판교신도시 입주를 목표로 전세를 옮겨 다녔지만 판교신도시 분양을 1년 가량 앞두고 우선순위 자격이 ’35세 이상 5년 이상 무주택자’에서 ’40세 이상 10년 이상 무주택자’ 등으로 갑자기 변경되면서 높은 경쟁률로 입주 기회를 놓쳤다.

김씨는 또 판교 청약에 실패한 뒤 부인의 직장생활과 자녀양육 문제로 인근의 기존 아파트를 매입하는 대안도 생각해봤지만 ’지금 집을 사지 말라’ ’집값이 머지않아 내릴 것’이라는 정부 정책과 발표에 망설이는 한두달 사이 분당은 물론 인근의 용인, 광주 지역까지 집값이 터무니없이 오르는 바람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아파트 청약으로 전략을 바꿨는 데 신규 분양가마저 폭등한 데다 담보대출 규제 등 비관적인 소식이 연일 쏟아져 한숨만 커진다”며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잘못된 정부 정책의 최대 피해자인 만큼 이들의 불이익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집값 올라 종부세 부담 ‘정든 집 떠나야 할 판’ = 평생 살던 집에서 안락한 노후를 보내려했던 시민들이 부동산 광풍에 휩싸여 갑자기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바람에 정든 집을 팔고 원치 않는 이사를 고려해야 하는 피해 사례도 있다.

집값이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인 공시가격 6억원을 넘어서면 연간 수백만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해 별다른 소득원이 없는 은퇴자로서는 계속 그 집을 보유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중소제조업체 임원으로 2년전 퇴직한 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31평형에 살고 있는 박모(61)씨는 종부세 부담 때문에 집을 팔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1997년 2억7천만원에 구입했던 이 아파트는 현재 시가가 12억원까지 올라 종부세가 500만원 수준이다.

자녀들까지 모두 출가시키고 현재 특별한 소득 없이 부부끼리 살고 있는 박씨는 종부세를 피하기 위해 이 아파트를 처분하고 서울 외곽으로 나가고 싶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아파트를 처분할 경우 내야 하는 3억원 정도의 양도소득세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부동산컨설팅업체 등으로부터 상담을 받았지만 아직까지도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 태전동의 32평짜리 아파트에 6년째 살고 있는 1급장애인 김모(45)씨는 6년 전까지 살다가 전세를 준 서울 개포동의 13평짜리 시영아파트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 중이다.

시영아파트의 시가가 7억원선까지 치솟아 3억원선인 태전동 아파트까지 합쳐 종부세를 400여만원이나 내야 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아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매달 벌어 들이는 100만원 외에 별다른 수입이 없는 김씨는 시영아파트를 처분해 종부세를 줄여야 하지만 역시 양도세 부담이 골치를 아프게 한다.

자신이 구입한 아파트 가격이 크게 뛰었지만 보유세와 양도세 사이에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구르는 경우도 있다.

공기업에 다니는 우모(37) 과장은 신혼 초 우연히 강남의 한 재건축 아파트를 사뒀다가 소위 ’대박신화’를 이룬 주인공.

우 과장은 지난 2000년 부인과 돈을 모아 재건축 대상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 주공1단지 저층아파트 13평형을 2억4천500만원에 구입, 재건축 추가부담금 1억3천만원을 내고 현재의 도곡 렉슬 43평형을 분양받아 올해 초 입주했다.

현재 이 아파트 시세는 20억원 선. 아파트 매입비와 추가부담금을 합해 3억7천500만원(금융비용 제외)을 투자하고, 16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거머쥔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우 과장은 올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합해 1천만원이 넘는 보유세를 내야 한다는 사실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렇다고 집을 팔지도 못한다. 1주택자지만 등기후 1년내 팔면 양도세가 50%나 부과되기 때문에 우 과장의 경우 약 6억원 안팎을 고스란히 세금으로 바쳐야 할 판이다.

이 경우 도곡 렉슬 43평형을 20억원에 팔아도 14억원밖에 손에 쥐지 못해 같은 동네 30평형대 아파트 사기도 버겁다.

우 과장은 “남들은 집값이 올라 부러워 하지만 샐러리맨이 연 1천만원이 넘는 보유세를 부담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올해는 연금을 해약해 종부세를 충당하기로 했지만 내년부터는 세금 낼 일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 ‘올라도 너무 올라’…당분간 집 장만 포기 =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내집 장만이 어려워지자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든 젊은이들도 많아 주위를 안타깝게 한다.

작년 봄 결혼한 대기업 사원 고모(27)씨는 부모님에게서 빌린 돈과 자신이 번 돈을 합쳐 전세(9천500만원)로 원룸을 빌려서 살고 있지만 요즘 부동산 관련 뉴스를 보면 도무지 자기 집을 구입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고씨는 “요즘 집값을 보면 서울 밖으로 나가야할 것 같은데 직장이 도심에 있어 그럴수도 없는 터라 난감한 상황이다. 서민들에게 주택은 투자가 아니라 생존인데 정부 정책이 먹혀들지 않으면서 계속 아파트 값이 오르기만 해 답답하다. 아이를 낳으면 내 집 마련이 사실상 물건너 간다는 생각이 든다. 당분간 집을 살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의 한 직장에 다니고 있는 최모(30)씨는 최근 구리역 인근의 한 아파트 22평을 당초 매매가격인 1억4천만원에 계약하려고 했으나 막상 계약을 체결하려는 순간 집주인이 가격을 2천만원 더 올려달라고 하는 바람에 이 아파트를 포기해야 했다.

눈높이를 낮춰서 같은 아파트 단지의 19평형으로 가격을 다시 알아봤으나 불과 두달 사이에 1천만원이나 가격이 오른 것을 보고 이 역시 접었다.

최씨는 “이후 하남시와 중계역 등 애초 생각지도 않았던 곳까지 알아봤으나 조금 괜찮다 싶으면 집값이 너무 비싸 결국 집사는 것을 당분간 보류키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믿기는 힘들지만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고 하고 일본에서는 부동산 거품이 꺼진 사례도 있으니 당분간은 전세로 마음 편하게 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올해 연봉이 3천만원이 넘는 전자회사에 입사한 권모(28.회사원)씨는 내년 결혼을 앞두고 집 문제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다는 새내기 직장인임에도 수입의 절반 이상을 저축에 쏟아붙는 등 ‘알뜰 생활’을 하고 있지만 오르는 집값 앞에서는 저축도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권씨는 “인생을 즐기지도 못한 채 집 장만하는 데 평생을 보내지 않을까 하는 게 요새 가장 큰 걱정”이라면서 “재테크 백날 잘해봐야 집사는 것보다 못한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전셋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옛말이고 은행에서 1억-2억원을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는 것이 나중에는 훨씬 더 유리하다는 게 요새 정설”이라면서 “이러다 보니 20평대 아파트 가격도 하루가 다르게 올라 걱정이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입력 : 2006.11.14 16:02 02' / 수정 : 2006.11.14 17:07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