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구름너머 2008. 4. 18. 09:28
posted by 구름너머 2007. 12. 14. 13:35
길이 6미터 초대형 오징어 잡혔다.
뉴시스 | 기사입력 2007-12-14 09:04

길이 6미터 초대형 오징어 잡혔다.

【영덕=뉴시스】

14일 오전 경북 영덕군 인근 해상에서 조업중이던 어선에 의해 초대형 오징어(길이 6미터)가 잡혀 화제가 되고 있다.

어민들에 의하면 이번에 잡힌 오징어는 한치(일명:대포알)가 아닌 일반 오징어라고 말을 전했다.

40년간 어선을 탄 선원들도 이렇게 큰 오징어는 처음 봤다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사진=강구해양파출소 제공) /최창호기자 cch790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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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름너머 2007. 10. 24. 14:47
잠자는 카드 올 연말부터 자동해지
헤럴드 생생뉴스 | 기사입력 2007-10-14 14:02 기사원문보기
광고
지금 그리고 나에게 의미있는것은???
연말부터 1년 이상 사용실적이 없는 휴면 신용카드는 자동 해지되고 연회비 면제 관행이 없어진다.

14일 금융감독위원회와 신용카드업계에 따르면 소비자 보호와 카드사의 과당 경쟁을 막기 위해 이런 내용의 표준약관이 연내에 시행된다.

여신금융협회와 카드사, 소비자단체, 금감위 등으로 구성된 작업반이 만들어 공정거래위원회 심사를 신청한 표준약관 제정안을 보면 카드사는 1년 이상 사용실적이 없는 휴면카드에 대해 회원에게 사전 고지한 뒤 해지한다.

카드사는 신규 회원에게 가입 첫 해부터 연회비를 부과한다.

이렇게 되면 휴면 카드의 연회비 징수를 둘러싼 카드사와 소비자의 마찰이 사라지고 소비자는 휴면 카드의 관리 부담도 덜 것으로 보인다.

카드사들이 연회비 면제를 내세우며 회원을 유치하는 무분별한 카드 발급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말 현재 휴면 카드는 2999만장으로 전체 카드의 32.9%를 차지하고 있고 이 중 전업계 카드사가 휴면 카드 회원에게 징수하는 연회비는 2004년 이후 연간 60여억원에 이르고 있다. 표준약관에는 카드 이용에 따른 포인트 적립 대상이 국내외 물품 및 서비스 이용 대금의 정상 입금액으로 명시되고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은 제외된다.

이와 함께 카드사가 회원의 이용 한도 등을 조정할 때는 우편이나 e-메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 등을 통해 회원에게 알린다.

금감위 관계자는 “현재 공정위가 관련 부처 의견을 듣는 막바지 단계이며 작업반이 만든 안대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조만간 약관심사자문위원회 자문과 공정위 의결을 거쳐 확정할 것”이라며 “이르면 11월에, 늦어도 12월에는 카드 표준약관이 시행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대우 기자(dewkim@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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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름너머 2007. 8. 24. 14:19
외계인과의 교전 사건 비밀 보고서 '일곱 왕자'





(그림설명: 8월 21일에 공개된 극비 보고서 '일곱 왕자')

로즈웰 사건 이래로 외계인들과의 조우나 [인적 교류]에 대한 수많은 괴담들이 등장하고 UFO관련 폭로나 목격자들의 증언들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세계 여러 나라들이 공식적으로 UFO 관련 비밀문서들을 공개하는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다.

2007년 8월 21일자로 미국의 유명 UFO 연구단체 포럼에 익명의 미군 정보요원 출신자가 암호명 '일곱 왕자'라는 당시 소련에 침투된 미 첩보요원이 미 중앙정보국에 보고한 UFO관련 극비 문서를 22년 만에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1985년 소련에서 발생한 외계인과 소련군 간에 발생한 교전과 관련된 첩보 보고서다.

문서에 따르면 1985년 1월 12일 러시아 세렘쵸바에 있는 대륙간 탄도탄 62호 발사 기지에 UFO가 착륙해 소련 특수부대원들과 교전을 벌였다.

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림설명: 러시아에 추락한 UFO)

"1985년 1월 22일에 소련 주재 미 첩보요원이 AN23 교신 장비를 통해 중앙정보국 지부에 보고했다. 1월 23일 그는 모스코바에 있는 중앙정보국 지부 간부들과 만나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받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고했다.

1985년 1월 12일 소련 컨트롤 센터 본부에서 근무하던 그는 세렘쵸바 대륙간 탄도탄 기지에서 발생한 UFO 사건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다.

UFO는 미사일 사일로가 위치한 K3 북서부 지대에 착륙했고 기지 초병들이 현장으로 출동했다.

현장에는 어두운 색을 띤 UFO가 착륙해 있었고 미사일 기술자 한 명이 UFO로 다가가서 기체를 구경하고 있었다. 병사들이 UFO 근처로 접근하자 UFO 안에서 외계인들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들은 곧 K3 지대의 동쪽 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외계인들에게 멈추라고 소리쳤다. UFO에서 나온 외계인 4명 중 3명은 멈췄으나 나머지 한 명은 계속 벽을 향해 걸었다.

홀로 걷던 외계인은 경비병이 쏜 소총에 맞고 쓰러졌다. 나머지 외계인 3명이 총을 맞고 쓰러진 동료를 들고 다시 UFO로 들어갔다.

2분 뒤 UFO의 측면에서 파란색과 초록색이 섞인 빔이 발사돼 인근에 세워둔 지프차에 맞았다. 지프차는 공기 중으로 사라졌고 이를 지켜본 병사들은 장갑차의 12.7mm 기관포로 UFO에 사격을 가했다."





(그림설명: 극비 보고서 '일곱 왕자')

"잠시 후 UFO의 문이 열리며 외계인 4명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본 병사들은 외계인들이 항복하는 것처럼 장갑차 앞에 앉는 것을 봤다.

경비원들은 러시아어로 외계인들과 대화를 나눠보려고 했으나 그들은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병사들은 외계인들을 지프차에 태워 국가보안위원회 45호 건물로 이송했다.

외계인들은 각자 다른 방으로 분산 수용돼 여러 나라 언어로 심문받았으나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현지 국가보안위원회 요원들은 외계인들을 모스코바 본부로 이송시키려고 계획했으나 외계인들은 1985년 1월 14일 손상된 UFO와 함께 감쪽같이 사라졌다.

국가보안위원회 요원들은 100장이 넘는 사진과 비디오를 촬영했는데 미 첩보요원이 이 가운데 25장을 모스코바 주재 정보국 지부에 보냈다.

사진들을 정밀 분석한 정보요원들은 22년간 러시아에서 활동한 첩보요원의 정보가 사실이라고 믿었다.

간부들은 이 특이한 사건에 관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이들은 첩보요원이 보낸 사진에 촬영된 외계인들이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기술했다. 그들은 미 본부에 사진들을 전송해 연구를 지속하도록 요청했다."





(그림설명: 특수 요원들에게 연행되는 외계인)

8월 21일에 공개된 이 비밀문서는 과연 사실일까? 만약 위의 사건이 사실이었다면 공통적으로 핵무기나 미사일 기지에 나타나 핵무기를 탐지하는 외계인들은 인류에게 대량살상 기술을 포함해 수많은 신기술을 제공한다고 알려진 외계인들과는 [다른 부류]의 외계인들인가?
posted by 구름너머 2007. 6. 4. 16:38
참된 자는 살기 힘든가?

from 진실의 근원http://www.gincil.com
올바른 삶.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좋은 말에 관심을 기울이고

    좋은 인연을 구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 뿐 돌아서면

    삭막한 현실이 곧 이를 망각하게 하고

    또 다시 현실의 욕망과 흐름에

    휩쓸려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이말은 뒤집어 보면

    현실이 요구하는 삶의 방식에 너무 물들어 있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되며

    오히려 현실의 달콤함에 취해 그것을 즐긴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일반적인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내기 때문에

    좋은 변화를 택하기 보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현실의 삶을 고수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이를 인생살이라고 자위합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올바른 이치에 따른 삶이 얼마나 평안하고 좋은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삶은 순리에 따르므로 무리가 없으며, 올바른 삶을 지향하므로 힘과 용기가 넘치고, 밝음을 추구하므로 맑고 깨끗하며, 평안하므로 미소와 여유가 가득합니다.

    사람이 현실에서 고통스러운 근본원인은 현실이 요구하는 모든 욕망을 모두 다 추구할려는 과정에서 거짓과 타협하며 어둠에 물들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항상 부족함을 느끼게 하며, 스스로 구별지음으로 인해 구별당함을 느끼게 되고, 끝없는 집착으로 인해 견딜 수 없는 인생의 무게와 고통을 짊어지게 됩니다.

    현실이 요구하는 대부분의 욕구들은 인간의 진정한 행복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들이며 진정 가치있는 것은 세상에 대한 사랑과 공덕, 그리고 올바른 삶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진실한 삶은 거창한 것이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매순간의 주어진 삶을 열심히 일해 부족함이 없도록 하고 거짓이 없어 항상 평안을 유지하며 올바른 이치로 하늘을 우러러 당당한 자유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는 것 중 하나가 물론 이러한 삶이 이해는 되고 좋기는 하지만 현실의 욕망과 집착을 떨어 버릴 때 사회에서 도태되거나 무기력한 인생이 되지 않을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에 커다란 사유의 오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진리에 따른 밝고 확신에 찬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얼핏 생각하기에는 참된 삶이 힘들것 같아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진리에 따른 삶은 좋은 인연과 올바른 이치를 실현하는 것 이외에는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으므로 항상 밝고 용기가 넘쳐나며 평안과 여유가 가득합니다.

    좋은 향기를 지닌 꽃은 그주위를 항상 아름답게 만들며 한 줌 빛은 주위의 모든 어둠을 밝혀주는 것입니다.

    걸릴 것 없는 자유인이 욕망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과 경쟁하여 뒤질 것이 어디 있으며 하늘과 땅을 우러러 두려움이 없는 자가 극복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현실에서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쉬워보여도 욕망과 집착만 가지고 이루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각자의 업이 다르고 정신이 다르고 노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욕망을 낸다고 모두 이루어 진다면 세상사람 누가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현실의 성공여부는 현실과 그대와의 인연이 있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이것은 그대의 진정한 가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합니다.

    하늘이 그대에게 현실에서 어떠한 일을 하도록 맡겼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대가 현실에서 무엇이 되던지 간에, 세상을 위해 얼마나 좋은 원인을 많이 지었으며 세상을 얼마나 밝게 만들었느냐에 의해 당신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선업을 짓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진리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마치 아무리 좋은 차를 가지고 있어도 운전면허를 갖지 못하면 오히려 가장 위험한 흉기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세상이 시대가 흐를수록 더욱 탐욕스러워지고 혼탁스러워지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권력을 쥔 지도층들이 세상을 위하여 했다는 일들이 오히려 세상을 나쁘게 만드는데 기여했기 때문인데 그이유는 바로 그들이 세상이 돌아가는 진리의 길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이 흘러가는 이치와 인간의 의미와 가치를 모른체 세상의 욕망에 따라 일을 하고, 자기 생각대로 함부로 세상을 지어나가는 과정에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악업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세상에서 성공한다는 것이 자랑이 되고 보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생명과 세상을 망치는 일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혼탁한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혼탁해져야 가능한 것이며 혼탁한 원인에 의해 쌓아올린 지위는 자기자신을 그만큼 위태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둡고 혼탁한 세상에서는 잘난 사람보다 평법한 사람이 더욱 인간의 가치를 잘 보존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들이 지난 인생에서 참다운 보람과 가치를 느끼느냐 아니면 허망함 속에서 무의미를 느끼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인생의 자세와 결심을 가지고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매일 매순간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살고자 노력했다면 우리들의 삶은 보람과 활력으로 가득찰 것이지만, 외형적인 소유만을 쫓아 헤맸다면 끝없는 부족과 압박감 속에 무상한 생애와 노쇄해진 몸 하나만 남을 것입니다.

    아무리 집착하고 소유해도 세상속에서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무상한 세월은 내곁에서 모든 것을 한순간에 앗아가 버리고 빈몸뚱아리만 남게 합니다.

    오직 유일한 나의 것은 매순간 삶을 보람차고 평안하게 할 좋은 인연과 밝은 삶 뿐이며, 죽어서는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고 후생을 끌고 갈 영혼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삶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쉽고 편하게 사는 것이 자기에게 유리한 것 같아도 그것은 오히려 자신에게 더 큰 손해를 줍니다. 진리를 모를 때는 그것이 쉬운 것 같아도 진리를 알면 오히려 그것이 더욱 어렵습니다. 진리속에는 더 멋지고 힘찬 삶과 좋은 인연이 넘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현대문명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생활방식은 인간심성을 망치고 인류사회를 병들인 주범으로 이것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인류문명은 회생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기존의 생활방식이 요구하는 부와 출세란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들은 왜 세상이 요구하고 있는 부와 지위를 그토록 갈구하고 있는 것일까요?

    남에게 우러러 보이고 큰소리 치기 위해서,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서, 아니면 세상을 위해 보람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일까요?

    사람들은 더 많은 보람을 찾기 위해 부와 지위와 권력을 추구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유사이래 세상의 큰 악이란 악은 모두 신과 인류와 민족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높은 지위와 권력을 지닌 지도자에 의해 이루어 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아무도 남을 해칠 수 없을 만큼 순수합니다.

    그러나 집단과 조직의 힘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죄악을 다 저지를 수 있습니다. 과거 징기스칸은 몽고족의 영광을 위해서, 나플레옹은 자유라는 명목으로, 히틀러는 독일민족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온 인류를 죽음의 재앙속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가까이에는 전임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해 온민족을 IMF 체제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와 같이 부와 권력과 지위는 잘 쓰지 못하는 경우 오히려 자신과 세상에 대해 큰 화가 되고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이치와 가치에 의해 부와 권력을 사용할 때는 세상에 큰 복이 되지만 잘못된 가치와 무지에 의해 이끌리는 부와 권력은 오히려 큰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출세할려고 애를 쓸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삶과 바른 이치를 깨닫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며 출세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하여 바르고 좋은 인연을 많이 행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이러한 잘못된 욕망과 허망한 소유욕 때문에 사회의 진실성은 붕괴되고 탐욕과 무질서로 어지러워져 가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사람들은 욕망과 소유가 척도가 된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이를 자신의 인생의 목표로 삼아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인류사회를 병들이고 있는 잘못된 가치관에서 벗어나 과감히 새로운 가치관과 인생관을 받아 들여야 할 때입니다.

    이때만이 비로소 어두운 마음에 빛이 들고 무거운 짐을 벗어 새로운 자유를 얻을 수 있으며 우리나라를 탐욕과 무질서의 혼돈으로부터 소생시키는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잣대에서 벗어나 그대가 옳고 보람있다고 여기는 일을 위하여 최고의 사명감과 사랑으로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면 완전한 진리의 법칙은 그대에게 그대가 받을 수 있는 인연의 범위내에서 최고의 만족과 성공을 제공할 것입니다.

    좋은 삶이란 마음에 불안이 없고 부족함이 없는 평안한 상태를 의미하며 좋은 세상이란 모든 것이 이치대로 되는 밝은 세상에서 서로 상대를 위하여 축복되는 인연을 짓는 세상을 말합니다.

    사람으로 나서 이렇게 사는 것 이상 더 바랄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 이상 욕심을 낸다면 그 사람은 이미 욕망으로 중독되어 밝은 삶과 진실한 행복을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인간일 것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떳떳하여 한점 부끄럼이 없으며 삶을 통하여 부족함이 없어 평안한 마음! 이러한 마음을 지닐 때 숨겨진 우주의 비밀은 그 의미를 하나씩 그대에게 드러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posted by 구름너머 2007. 6. 1. 13:48


사랑과 집착과 깨달음


from
진실의 근원http://www.gincil.com






생명의 진실에 대해 알지 못하고

깨달음의 실체에 대해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전해져 내려오는 잘못된 관념에 빠져

세상에 대한 사랑과 진실에 대한 관심까지도 집착이라고 버리라고 한다.







그들은 불성은 순원무잡하여 본디 아무 것도 없기에

깨달음과 진리, 세상에 대한 사랑과 자비까지 유위법이라 하여 버리라고 한다.









그러나 무위법과 유위법을 구별하는 것 자체가 사량심이며 분별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은 무위법과 유위법을 구별한 적이 없었으며

이러한 개념은 불교가 생명력을 상실하고 관념화되던

부파불교시절에 불교철학자들에게서 나온 개념들이었다.









무위법과 유위법의 구별은 실상의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생명의 실상은 사랑과 진리로 오롯이 존재하는 것일 뿐

그 이외에는 오직 이를 설명하는 말만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 있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완전한 인과의 뜻속에 있으며

깨달음과 불성 또한 인과의 이치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무위의 경지는 깨달은 자들만이 아는 경지이니

그단계에 이르지 못한 일반인들이 논할 바가 못되며

깨닫지 못한 자가 알지도 못하는 무위의 경지를

마치 아는 양 주장하는 것은 망상이며 착각에 불과한 것이다.









부처님은 존재하는 실상 속에 깃들어 있는

인과의 이치에 대해 설명하셨을 뿐 어려운 문자는 쓰지 않으셨다.

그래서 팔만대장경을 설하셨으면서도

"나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고 하신 이유는

세상에 나타나있는 현상을 사실 그대로 나타냈을 뿐

그속에 자신의 사견과 생각을 한마디도 개입시키지 않았다는 뜻인 것이다.









진실을 보게되면 환상과 생각이 사라지고 모든 관념에서 벗어나

존재하는 것을 가장 쉬운 언어로 묘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을 말하는 데는 어려운 문자나 수식이 아무 필요가 없게 되며

생활속의 일상적인 언어만 있으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불교가 현재와 같이 생명력이 사라지고 관념적이 된 이유에는

삶에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하는 관념과 논리에 빠져

우주와 생명의 성품인 사랑과 이치를 외면한데서 비롯한다.









요즘 많은 불교사원이나 관련서적, 인터넷 사이트를 가보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관념들을 엮어서

결론없는 이야기를 나열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글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 해도 돌아서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그 이유는 이러한 글들이 생생한 생명의 실상를 보지 못하고

전해들은 이야기를 관념속에서 논리화시켜 환상을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나눔터에서 쓴 어떤 사람의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인간의 삶이란 간단치가 않은 것 같아요..

많은 것들이 해결되어 마음의 자유를 얻었는가 싶으면 어느새 그 자만의 자락으

로 더 큰 번뇌와 고통이 다가오거든요..

문제는 그 문을 찾는 방법인데요... 세상의 현상과 인연에서 관심을 끊고 자기내

부로 깊숙히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생각과 이성은 마음과 밀접하게 관련되는데요...

마음이 활동하는 상태에서의 생각은 거짓인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은 집착을 먹고 살거든요... 그것이 악한 것이든 선한 것이든지요..

님이 자신의 세상과 믿음과 존재를 모두 버리는 용기를 내시어...

문을 찾게 되시길..."






이 글은 집착을 버리면 마음의 자유를 얻는다는 식으로 전개되어 있으나 그 내용

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속에는 아무런 실체도 없이 전해들은 관념들을 엮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그속에는 마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마음을 닦는 것인지? 마음의 자유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해야 어두운 세상에서 참과 거짓을 가려 밝음을 찾을 수 있

는지? 인간이 왜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

가야 하는지? 삶이 무엇인지? 깨달음이 무엇인지? 에 대한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구도의 길을 가는 많은 사람들이 빠진 함정이다.




이와 같이 요즘 조금 안다고 하는 이들은

전해져 내려오는 잘못된 논리와 관념에 빠져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진리를 말하면 틀린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모든 구별을 초월해 살아야 한다고 감히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지나치게 되면 자기착각에 빠져

법을 보지 못하면서도 무위법을 깨달았다고 주장하면서

함부로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고 법을 모독하는

광적 현상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짓을 함부로 하는 것은 마음의 자유를 얻은 증거가 아니라

불성에 이를 수 있는 선근과 양심을 완전히 상실해 버리고

악과 어둠의 화신이 되었다는 증거일 뿐인 것이다.









그동안 소위 깨달았다고 하는 많은 선지식들이 나타나

수많은 기행과 선문답을 남겼지만

그들이 세상을 밝히는 이치와 뜻을 거의 남기고 못하고 사라진 것은

어두운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역할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깨달음과 진리의 실체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평생 보고 들었던 깨달음에 대한 관념과 수행에 관한 이야기들 뿐이었던 것이다.









이들을 옹호하는 자들은

해탈에는 마음의 자유를 얻는 心해탈과 지혜를 얻는 慧해탈의 경지가 있는데 선

지식들은 심해탈은 얻었으나 혜해탈은 얻지 못했기에 깨달음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으나 법을 펴지는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음이 맑아지면 그 거울에는 세상의 이치가 저절로 비치는 것이어서

心해탈과 慧해탈은 절대 구별될 수 없는 것이니

심해탈과 혜해탈을 구별하는 것은 세상이치가 비치지 않는 깨지않은 마음을 변명

하기 위한 강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해탈을 하게되면 세상의 뜻을 보게 되고

예수와 석가와 같이 우주의 이치와 인간의 길에 대해 분명한 가르침을 펴게 되

는 것이다.









이와 같이 깨달음과 진리의 실체는 어둠을 맴도는 안개와 같이

실상 밖에서 맴돌며 세상의 눈을 흐려왔다.

그리하여 깨달음과 진리는 사람들마다 자신들의 관념속에 그린 그림이 되어 십인

십색의 환상을 짓고 있었고

그 그림은 각자의 감정과 환경에 따라 제멋대로 변하여

세상을 더욱 혼동속으로 몰아 넣었던 것이다.









진리는 수학의 공식과 같이 명확한 것이다.

깨달음의 실체를 알게되면 마치 눈앞에 자연을 보듯

세상속에 존재하는 모든 이치와 진실을 명확히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완전하고 신성한 우주의식(불성)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나타나

고 있으며 서로 위하고 축복하는 가운데 완전해지도록 뜻이 지어져 있다.









이 불성의 본질은 무가 아니라 존재함이며

살아 생동함이며 완전함이며 사랑이며 밝음이기 때문에

세상을 위한 인간의 사랑과 관심은

우주의 근본성품이자 존재의미로서 절대집착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땅으로 넘어진 사람은 땅으로 일어서야 한다.

육신을 가지고 이땅에 태어난 인간은 삶을 통하여 자신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세상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도록 되어있는 사람이

삶을 통하여 자신을 닦지 않고서 무엇으로 자신의 애욕과 습을 태우고 자신을 완

성시킬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명상으로 욕망을 버리고 마음으로 구별과 집착을 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

는 것은 땀을 흘리지 않고서 생각만 가지고 풍년농사를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것

과 같이 허망한 일인 것이다.









이러한 진실을 모르고 관념에 빠져

사랑과 진실을 찾는 것조차 집착이며 유위법이라 주장한다면

그 자는 공에 빠진 자로서 무위법이란 단어에 갖혀

그야말로 토끼뿔, 거북이털만 찾는 어리석은 자인 것이다

posted by 구름너머 2007. 1. 10. 08:43

살아있는 모든 것은 에너지로 고동친다.

우리 몸도 에너지로 둘러싸여 있고 자신만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에너지에는 한 개인의 역사 이상의 수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읽고 느끼고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누군가의 고유한 겸험과 감정, 영혼을 함께 나눌 수 있다.

-영혼의 해부 제1부 머리말-

posted by 구름너머 2006. 11. 8. 19:12

진실의 근원에 실린 글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진정한 기도의 의미를 되짚어 보았으면 합니다.

진실의 근원==> http://www.gincil.com/

기도의 참뜻
허해구 2006-09-22 01:18:56, 조회 : 7, 추천 : 1

밝은 세상에서 현명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바른 이치와 생명의 실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모른체 인간의 욕망과 환상이 만들어 놓은 어리석은 관습에 빠져 살고 있다. 그중 가장 좋은 예가 바로 기도라는 생활양식이다.
오늘날 교회나 법당, 대구 팔공산 갓바위 같은 곳에서는 수많은 신자들이 사업 잘되고 자식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으며 각종 기도원이나 산속에서는 금식기도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오늘날 종교에서는 마치 이러한 행위가 마치 정당한 신앙의 일부인 것처럼 사람들을 오도하고 선전하여 어리석은 관념이 세상에 널리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은 세상이 어둡고 힘들수록 더욱 폭발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그러나 그현상의 내면에는 거대한 사회병리가 깃들어 있기에 우리는 큰 경각심을 갖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건강한 사회원리가 무시되고 제3의 힘에 의지하려고 하는 요행심리가 사회를 지배하게 될 때 그사회의 건강성은 그만큼 약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를 지탱하는 환상속의 요소로서 바로 신의 가피력이라는 것이 있다. 종교가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중요한 이유중 하나가 신의 보살핌이라는 주장으로 나약한 인간이 최종적으로 의지할 곳은 절대적인 신 밖에 없으며 신은 인간이 진정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때 분명히 도움을 준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인간의 생각이 빛어낸 어리석음의 극치이며 진리의 본질에서 어긋난 종교의 왜곡현상이다. 세상의 일은 있는 일들의 작용에 의해 원인이 지어지고 결과가 나타난다. 원인을 짓지 않고서 저절로 나타나는 일은 이세상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기도로서 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원인을 짓지 않고 결과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 치성을 드리거나 기도하는 많은 기복신앙이 바로 이러한 이치를 모르는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나타난 현상인 것이다. 이러한 어리석음은 마치 씨를 뿌리지 않고 수확을 거두게 해달라고 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농사를 지을 때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고 물길을 터주는 끝없는 정성만이 풍년을 약속한다. 기도로서 복을 받고자 하는 행동은 씨만 뿌려 놓고 농사를 짓지 않은 채 기도만 하면 풍년이 들어야 한다는 논리와 같은 것이다. 신은 완전한 이치로 자신을 나타내기 때문에 사람들이 간절히 바란다고 해서 신이 자기 맘대로 이치를 흩트리면서 까지 함부로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이치는 명확한 것이다. 이곳에서 적용되지 않는 일은 저곳에서도 적용되지 않는다. 만약 기도를 해서 안되는 일이 이루어 진다면 농사를 짓는데 있어서도 기도만 하면 풍년이 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세상의 진리라 하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고 사업이 잘되도록 열심히 노력을 하지 않고 종교집단에 헌금을 많이 하고 기도만 열심히 하는 것은 마치 농부가 열심히 땀을 흘리지 않고 기도만으로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은 모습인 것이다.
신의 뜻은 가장 완전한 이치이기 때문에 만약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세상에 나타난다면 신의 뜻은 불완전한 것이 되고 신은 불완전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따라서 절대적인 존재인 신에게 의지하고자 한다면 그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원인과 결과의 이치도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 좋은 예가 중세기의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십자군 전투에서도 볼 수 있다. 그들의 하느님은 모두 똑 같은 하늘에 있는 유일신이다. 두 종교는 구약에 나오는 인물들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주장하며 섬기고 있다. 그들은 전투에 나서기 전에 각자의 승리를 하느님에게 기원했다. 하느님이 과연 누구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느님은 자신의 종족과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미덕이 있으며 사회속에 신의와 정의가 살아 있어 국력이 강한 나라를 승리자로 선택하였던 것이다.
요즘과 같이 진리가 왜곡되고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세상에서 잘못된 종교집단들이 기도만하면 축복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큰 혹세무민의 죄악인 것이며 성자들의 가르침을 배반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느님을 입으로만 외우지 말고 참된 신의 뜻을 실천하라고 바리새인들을 꾸짖었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그점에서 볼 때 오늘날 기도만 하면 구원과 축복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교리들은 사람들의 삶을 더욱 어둡게 만드는 것이며 종교인들이 많은 신자를 확보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고자 하는 욕망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다. 요즘 불길처럼 번져가는 기도 열풍은 과히 병적인 정도로서 그것은 오히려 욕심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어 더 큰 죄를 저지르게 하는 악의 봉사자가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위험한 일은 기도란 것이 자칫 잘못하면 유혼의 세계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과 같은 어두운 세상에서는 한을 지닌 영혼들이 떠도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심신이 허약한 상태에서 기도를 하면 떠도는 영혼을 만나 평생 귀신의 노예가 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인간의 영혼은 존재하는 고로 사소한 영적 현상들이 세상에 작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기도와 제사가 떠도는 영혼들을 달래줄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 현상들은 세상의 거대한 흐름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현실과 영적 세계는 분리되어 있도록 구조지워져 있는 것이 세상의 원리이기 때문에 영적현상이 세상에 미치는 힘은 매우 적으며 그 영향은 삶속에서 거의 무시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기도란 것은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충족시켜 주도록 신에게 투정부리듯 강요하는 것일 수가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예수께서 주기도문을 설명하신데도 잘 나와 있듯이 기도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진실된 마음으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뉘우치면서 좋은 일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 자신의 결심을 다지는 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긴다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행동하되 그결과는 완전한 신의 이치에 맞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를 통해 어두워졌던 자신의 양심을 회복하고 참된 삶의 길을 찾아가는 용기를 내며 자신의 마음을 닦아내는 수양의 시간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